엊그제 윤석열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행사는 크게 3부로 나눠 진행됐다. 5부 요인 및 여야 지도부와의 사전환담이 1부라면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27분간의 시정연설이 2부, 그리고 이어진 국회 상임위원장단과의 간담회가 3부에 해당된다. 그런데 1부와 2부는 그 내용과 상관없이 모양새부터가 좋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피켓시위를 하지 않겠다는 신사협정을 사실상 깨버렸고, 소속 의원들은 윤 대통령과의 악수를 피하거나 마지못해 하는 척했다. 심지어 시정연설 후 악수를 청하는 대통령을 두고 "이제 그만두셔야죠"라고 했다는 내용을 자신의 SNS에 적은 의원도 있다. 찾아온 손님을 대하는 예법도 아니었고, 삼권분립을 이루는 입법부 최고 성원으로서의 자긍심과 명예를 보이지도 못했다.

사전환담의 짧은 시간을 감안하면 제대로 된 대화는 3부 간담회에서 이뤄졌다고 본다. 야당 상임위원장들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 교권 회복 문제, 공공의대와 의대 정원 확대, 국민연금 개혁 등의 현안들을 짚었다. 특히 김민기 국토교통위원장은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에 김건희 여사 처가 땅이 연관돼 있는 만큼 대통령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청했고, 김철민 교육위원장은 대통령실 고위공직자 학폭 문제 연루 의혹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교흥 행정안전위원장은 이태원·오송 참사와 관련해 유가족의 손을 맞잡아달라고 말했다. 상임위원장들의 발언에 대해 윤 대통령은 "위원장님들의 소중한 말씀을 참모들이 다 메모했다"면서 국정 운영에 잘 반영하겠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 후 국회 상임위원장들과 간담회를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윤 대통령의 예산안이 재정건전성을 훼손하고 복지를 축소한다고 비판하면서 시정연설 불참을 선언하는 바람에 상임위원장들과의 간담회도 열리지 못했다. 지난 2016년 10월 24일 당시 탄핵 위기에 처해 있던 박근혜 대통령이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끝낸 뒤 간담회를 갖지 못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동안 꽉 막혀있던 대통령과 국회 간 대화의 물꼬는 일단 이렇게나마 다시 터졌다. 간담회 재개가 대통령과 국회 지도자들이 국정 현안을 놓고 서로의 의견을 직접 주고받을 수 있는 소통의 다양한 플랫폼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야당 수장들과의 대화는 그것대로 추진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