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극 자체가 예술 작품이 되기도 한다. 연극이나 소설에서는 상황을 고조시켜 비극의 서사를 절묘하게 표현한다.
형태를 뒤틀어 비극의 처참함을 담아내는 예술 작품과 달리 우리 주변의 비극은 지극히 평범하다. 지난 4월 건물이 통째로 경매에 넘어간 인천 미추홀구 한 아파트 앞을 서성거렸다. 하루아침에 집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곳이 제격이었다. 1시간 정도 '맨땅에 헤딩'을 하고 있을 때쯤 검정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노인을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담배를 입에서 떼지 않았다. 담뱃불이 다 꺼질 때면 새 담배를 물었다.
평생 목수 일을 하며 마련한 집이라고 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빚 하나 없이 장만한 전셋집에서 아내와 함께 노후를 보내려고 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느냐. 좀 알려달라"고 처음 본 사람에게 물을 정도로 간절했다. 그때 노인이 짓던 표정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지난 8월 후배 기자가 전세사기 피해자 중 유명을 달리한 한 노인을 취재했다. 이 노인은 집에서 지병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남편이 집에서 쓸쓸히 숨을 거뒀을 때 아내는 생계를 위해 요양병원에서 밤새 와상 환자를 간병하고 있었다.
이달 초, 취재차 지난 기사를 참고하다 지난 여름 유명을 달리한 노인이 목수 일을 하며 평생 모은 돈으로 전셋집을 장만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봄에 만난 노인과 이름, 생김새, 하는 일, 아내의 직업까지 모두 같았다.
그의 몸에서 풍기던 담배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날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질문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더 줬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평범한 비극이 소설보다 더 처참하게 느껴졌다.
/변민철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