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올해도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하는 법정시한인 2일을 넘기고 '지각예산'의 오명을 또 듣게 됐다. 예산안이 헌법이 규정한 시한을 넘긴 건 올해 뿐이 아니지만 특히 올해는 탄핵정국에 쌍특검법 처리를 두고 여야의 대치가 격해지고 있다는 점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지난 달 30일까지 마쳐야 하는 예산 심사 기한은 이미 넘겼지만 여야는 서로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고 있다. 여야는 연구개발 사업과 권력기관 특수활동비, 새만금 사업 관련 등 쟁점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국회 고유 권한인 예산안 감액과 달리 증액은 정부 동의가 필요해 여야 합의가 전제돼야 하는 데 탄핵과 쌍특검 등의 정쟁적 요소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예산안은 법정시한을 넘겨 타결이 되겠지만 잘못하다가는 지난 해 법정시한을 훨씬 넘긴 12월 24일 기록을 갱신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예산안에 대한 여야의 입장 차도 문제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격화되고 있는 여야 대치가 예산안 타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탄핵 발의를 예고했던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주 사퇴했고, 민주당 주도로 통과시킨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은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야당이 의석을 앞세워 일방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키고, 정부는 거부권으로 대응하는 대결 정치가 일상화되면서 예산국회의 본분마저 잊고 대치정국은 가팔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전 방통위원장은 1일 본회의를 앞두고 사의를 표명했고, 윤 대통령은 이를 재가했다. 방통위는 기능을 상실하게 됐다. 민주당은 탄핵소추 발의와 관련해 "언론장악 등 공직자로서 반헌법적"이라는 이유를 들었지만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의 중대한 법 위반"을 탄핵 사유로 들은 헌법재판소의 판례에 비추어 장기간의 위원장 직무 정지를 노린 거대야당의 횡포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으로 6개월 업무공백이 초래된 전례에 비추어 볼 때 민주당이 탄핵소추를 남발하는 건 온당하지 않다. 윤 대통령도 애당초 방송장악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사가 아니라 방송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사를 내세웠어야 했다.

예산은 내팽개친 채 정쟁에 몰두하는 여야 거대정당들의 대치정국은 점점 심화될 전망이다. 당장 여야는 정쟁을 멈추고 예산안 통과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