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모자 감시있기에 심사위원 선정 더 고심
문의전화·항의 대응까지 전쟁같은 시기지만
문학 열기 살아있기에 신춘문예 전통 계속

올해 시 부문에서는 김문자씨의 '달로 가는 나무'가, 소설 부문에서는 이준아씨의 단편 소설 '하찮은 진심'이 막판까지 치열한 논의를 거친 끝에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신춘문예는 신문사가 주관해 새해를 맞이해 상금을 걸고 문학 작품을 공개 모집, 신인 문학 작가를 등단시키는 제도로 오랫동안 자리 잡았다. 경인일보는 경기·인천지역 신문사로는 유일하게 신춘문예를 진행하고 있다. 1960년 한국 문학계를 짊어질 문학인들을 양성한다는 취지로 시행됐지만, 5·16군사정변 이후 한동안 이어지지 못하다가 1987년 부활했다. 이후 한 차례 중단없이 이어온 것은 경인일보의 자랑이다.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1987년에서 1992년에는 소설과 시, 시조 등 3개 부문에서 공모를 진행했던 것을 1993년 시조 대신 동화부문을 신설해 1995년까지 당선자를 뽑았다. 그 사이 동화책도 발간됐으며, 1994년에는 당선자 23명의 작품 126편을 모아 시화집 '우리 시대는 文學的이다(경인신춘문학회)'를 펴내는 등 대한민국 문학계의 발전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해왔다.
역사가 깊어지고, 경인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들이 문단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커질수록 업무를 담당하는 문화체육부 기자들의 긴장감도 커진다. 한여름 무더위가 꺾인다 싶으면 부서 내에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올해 신춘문예는…"이라는 말을 꺼낸다. 이렇게 신춘문예에 시동이 걸리면 부서원 모두가 심사위원 선정에서부터 모집 요강, 원고를 심사위원들에게 전달하는 방법, 심사위원들과의 소통 등 과정, 과정마다 긴장할 수밖에 없다. 원고 하나, 하나에 응모자들의 치열한 고민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심사위원 선정에는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당선작과 함께 심사위원이 공개됐을 때, 응모자들은 과정뿐 아니라 어떤 심사위원들이 원고를 봤는가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지켜본다. 수상자들이 가장 먼저 묻는 것도 어떤 분이 심사위원을 맡아주셨는가에 대해서다.
그렇기 때문에 '심사위원을 맡겨달라'고 연락해온 분들에게는 심사를 맡기지 않았다. 물론, 참신한 글과 신인의 등장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다는 선의를 갖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겠으나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호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우려에서다.
그럼에도 어려운 점은 많다. 평소와 같이 취재, 기사마감을 하면서도 하루에도 수십 통의 문의전화에 같은 답변을 반복해야 하기도 하고, 심사위원들이 최종까지 고민하는 작품 중에는 응모자격이 없는 지원자의 것이 포함돼있을 수 있어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수상자 발표 이후에도 후폭풍을 견뎌야 문화부 기자로 신춘문예 좀 해봤다고 자신할 수 있다. "왜 내 작품을 뽑지 않았냐"는 항의 정도는 양반 축에 속한다. 낮에는 사무실로, 밤에는 개인 전화로 "심사가 잘 못됐다"며 기자를 괴롭히기도 하고, 심지어는 "내 작품이 상을 받았어야 하는데 선정이 안 된 건 문화체육부 기자들 잘못"이라며 고발을 한 사례도 있었다. 수년 전 신춘문예를 폐지한 다른 언론사가 부러울 정도다.
문학보다는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느껴지는 사회 분위기지만, 스마트폰 등으로 인한 문해력 저하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경인일보 신춘문예의 역사는 이어진다. 응모 편수의 차이는 있지만, 매년 유럽과 미주 등 해외뿐 아니라 병원과 교도소 등에서도 원고가 접수되는 등 여전히 문학에 대한 뜨거운 열기가 살아있기에.
신춘문예를 담당하면서 인연을 맺은 한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문학은 언제나 위기였습니다. 다만, 최고의 지적 유희라는 점에서 문학의 생명은 영원할 것입니다."
/김성주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