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세·제재’ 거짓핑계… 본목적 있나
돌연 피고 된 주민 9명 다음달 선고
“수십년 생활터전 논의도 거부당해”
재판중에도 ‘우리 땅’ 이유만 되풀이
수십년 동안 토지사용료를 내면서 지낸 학교 인근 지역주민들에게 돌연 한 달 내로 건물을 철거하라는 통보를 내린 학교법인 ‘수억학원’(1월5일자 5면 보도)이 사전 예고나 논의도 없이 곧바로 소송 절차로 돌입했던 배경에 대해 주민들에게는 물론 법정에서조차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당초 주민 측에는 토지세 문제나 교육당국의 제재 등을 거론했다고 하는데, 정작 관할 세무서나 교육부, 경기도교육청에서는 수억학원을 대상으로 어떤 처분도 내리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수억학원이 다른 핑계를 들며 본 목적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민사9단독은 학교법인 수억학원이 파주 문산수억중·고등학교 인근 주민 9명을 상대로 제기한 철거, 토지인도 청구 등 소송에 대해 지난해 12월 변론기일을 마치고 오는 2월 선고를 앞두고 있다.
190억여원의 재산을 보유한 수억학원은 지난 2022년 7월 변호인을 선임한 뒤 주민들에게 철거 명령 내용증명 서류를 발송했다. 이후 한 달여 만인 8월 소장을 접수해 곧장 재판에 돌입했다. 피고가 된 주민들은 이후 1년6개월여 동안 수억학원에서 단 한 번도 소송 취지나 배경 등을 직접 설명한 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수십년 생활 터전인 만큼 주민들은 상호 논의를 통해서라도 대안을 찾고 싶지만, 대화조차 거절당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이들 건물은 학교가 부지를 매입하기 전부터 존재했었고 학교 설립 이후로도 수억학원에 일정 토지사용료를 매년 지불하면서 지내왔다. 문산수억고등학교 행정실을 직접 찾았었다는 한 주민은 “예고도 없이 한 달 만에 나가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주민들이 직접 토지를 매입하는 등의 다른 대안을 두고 얘기해보려 했으나, 학교는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며 변호사를 통해 얘기하라는 답변 뿐이었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에게는 해당 부지 토지세가 과도하게 부과되는 문제나 교육당국의 제재 문제 등을 언급했다고 하는데 정작 세무서나 교육부, 도교육청 등에서 수억학원을 대상으로 특정 처분을 내린 적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파주세무서는 지난해 11월 주민 측 변호인의 관련 문의에 대해 ‘해당 토지 등에 부과된 국세 내역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공식 회신했다. 도교육청 관계자도 “교육청에서 학교법인의 사유재산에 어떤 조치를 내릴 권한은 없고, 따라서 교육청 차원에서 수억학원 측에 특정 입장을 전달한 바는 없고 소송에 개입하고 있지도 않다”고 전했다.
이처럼 앞뒤 다른 사유를 들면서까지 설명을 회피하려는 정황이 나타나자 수억학원이 일방적으로 토지 확보를 강행하는 배경을 두고 의혹이 커지고 있다. 주민 측 변호인은 “원고(수억학원)측 변호인도 재판이 진행되기 전에는 세금이나 부지 용도 문제 등을 언급하다가, 재판 중에서는 이와 관련한 얘기 하나 없이 ‘우리 땅’이라는 이유만을 들고 있어 의아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수억학원 관계자는 “도교육청의 관여를 받는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진행하는 것이고 자세한 상황은 설명하기 어렵다. 소송대리 중인 법무법인의 입장으로 대체한다”고 했다. 수억학원 측 법무법인 관계자는 “논의한 결과 설명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