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고 떠나, 공포만 남은 급식실·(1)] 폐암 유발하는 '조리흄'… 책임 방기한 교육당국


15억 들인 도교육청 전수점검 '지적'
"28.6% 충족, 너무 높아 허점" 주장
성능뿐 아니라 종합적인 판단 필요
현장 적용시 '수정·보완 필요'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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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경기도내 한 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실무사들이 급식 준비를 하고 있다. 2024.1.4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급식실 노동자들의 폐암을 유발하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조리흄(cooking fume)이 꼽힌다. 식재료를 고온에 튀기거나 구울 때 나오는 희뿌연 연기다.

조리흄의 위험성을 인지한 정부는 급식실 환기설치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이를 토대로 경기도교육청은 학교 전수점검에 나서는 등 움직임을 보였으나 결과를 분석한 전문가들은 '엉터리'로 가득한 형식적 조치라며 교육당국이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 그래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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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등에 따르면 노동부는 2021년 '학교 급식조리실 환기설비 설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수원시의 한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 판정을 받은 한 조리실무사가 그해 산업재해 인정을 받은 이후다. 이로써 폐암 원인인 조리흄이 환풍설비를 통해 조리실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후드설비 기준이 뒤늦게 마련된 것이다.

도교육청은 노동부의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지난해 예산 약 15억원을 들여 '학교급식 환기시설 전수점검'을 진행했다. 도교육청이 경기도의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도내 급식조리실에 있는 후드별 배기성능이 지침 기준을 충족한 비율은 28.6%로 나타났다. 도교육청은 이를 토대로 후드 설비 개선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도교육청의 점검이 허점투성이라고 주장한다. 노동부 가이드라인 제작 책임자인 하현철 창원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우선 충족 비율이 지나치게 높게 나왔다는 것을 문제 삼고 있다. 도교육청은 후드 '유량'을 토대로 점검결과를 표기했는데, 후드 성능뿐 아니라 후드모양, 방해기류, 작업자의 호흡영역 보호 등 종합적으로 판단했어야 하는 게 지침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 교수는 "지침에 있는 기준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게 제작 의도였지만, 점검 결과를 보면 산업보건전문가들도 가이드에 대한 개념 이해를 하지 못한 채 측정을 제대로 못 한 부분이 있다"며 "전국 기준으로 넓히면 1~2%가량만 가이드 기준을 충족한 게 현실이다. 현재 상태에서 설비점검은 예산 낭비일 뿐이며, 가이드라인 점검표는 학교에 설치된 후드를 전수 교체한 뒤에 정기점검을 할 때 활용해야 맞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조리흄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유해물질에 해당하지 않아, 법의 규제를 받는 '규칙' 아닌 '지침'의 형태로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이다. 그럼 이후에 지침을 토대로 실제 현장에 적용하며 수정·보완을 해 나가는 게 책임주체인 교육당국의 역할"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도교육청 관계자는 "후드 성능은 외부 전문업체를 통해 측정한 탓에 충족률과 관련해서는 답변하기 어렵지만, 현재까지는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으로 점검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오는 2월까지 436개교의 환기설비 개선이 완료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일각에선 도내 학교 급식실에서 발생하는 문제임에도 책임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현실 변화가 더디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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