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학교 급식실 노동자의 폐암이 처음으로 '직업병'으로 인정되면서 이에 대한 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관련 예산이 취지와 다르게 쓰이고 있다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급식노동자들의 폐암을 유발하는 결정적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조리흄(cooking fume)'이다. 조리흄은 식재료를 고온에서 튀기거나 구울 때 나오는 희뿌연 연기로 전기 기반의 조리기구를 사용하면 현저히 줄어든다. 전기기구는 기름을 일정 온도로 유지할 수 있어 급식실이 고온으로 치솟는 걸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화석연료가 타면서 나오는 일산화탄소 등의 유해 물질도 막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종합적인 판단이다.

경기도의회는 2022년 하반기에 '2023년도 경기도교육청 예산안'을 의결하면서 '급식기구 및 시설 확충' 명목의 예산을 1천50억원 늘렸다. 관련된 정책연구와 급식 노동자들의 요구를 바탕으로 조리실 내 가스설비를 전기설비로 변경하라는 것이 예산 증액의 취지였다. '최소 학교 1곳당 인덕션 1대 설치'를 할 수 있도록 인덕션 및 자동화 기구로 교체하는 데 사용하자는 내용이다. 도내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은 예산의 취지에 감동했을 것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급식 노동자들의 건강을 보살피는 행정의 관심이 고마웠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예산은 명분과 취지를 벗어나 집행됐다. 1천50억원의 예산 중 인덕션 및 자동화 기구 교체에 사용된 예산은 332억원에 그쳤다. 나머지 예산 718억원은 고스란히 다른 곳에 사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노후시설 및 기구 교체 370억원, 현대화사업 285억원, 신설학교 기구비 33억원 등에 투입됐다. 노후시설 및 기구 교체는 냉장고, 세척기 등 급식기구 교체와 조리실 바닥공사 등을 뜻한다. 가스설비를 전기설비로 교체하라고 증액·배정한 예산이 엉뚱한 곳에 쓰인 것이다. 이에 대해 도교육청은 내구 연한 등의 문제로 기구 교체가 쉽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생색 행정을 위해 법적으로 집행할 수 없는 예산을 신청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해명이다.

한 달 전 3년간 투병하던 한 학교급식 노동자가 안타깝게 결국 숨을 거뒀고, 여전히 급식노동자들은 폐암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발병률을 조금이라도 낮추고 개선하기 위한 예산의 70%가 엉뚱한 곳에 쓰였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예산의 편성과 집행의 적절성을 감사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