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
수도권 한 대학에서 모의 국민참여재판이 열리는 모습. 이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경인일보DB

“갑자기 법원에서 온 우편물에 제가 무슨 죄라도 지은 줄 알았어요.”

지난 24일 오전 11시께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선정 절차를 마친 수원지방법원의 한 법정 앞에서 만난 A(59) 씨는 “배심원 초대장이 배송된 걸 보고 처음엔 놀랐지만 영화에 나오는 검사와 변호인의 법적 다툼 같은 모습을 직접 보고 재판에도 참여한다는 데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와봤다”고 말했다.

공정성을 고려해 법원이 관할지역 거주민(만 20세 이상, 공무원·정치인 등 특정 직업 제외)에 무작위로 배송하는 초대장을 받고 배심원 후보자(이날 총 33명) 자격으로 찾아 온 A씨는 최종 배심원에 들지 못해 선정 절차만 지켜본 뒤 돌아가야 했지만 아쉬움 대신 짧게나마 품었던 기대감을 내비쳤다.

A씨 대신 선정된 7명의 배심원은 이날 늦은 밤까지 이어진 수원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 이정재) 법정에서의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해 한 중국인 부부(남편 B씨·38, 아내 C씨·42)인 두 피고인 중 한 명의 무죄 선고를 유도해냈다.

일반적으로 국민참여재판은 피고인 측이 해당 사건과 관련해 일반 시민에게 형성될 수 있는 감정적 공감대를 재판에 전략적으로 활용하고자 할 때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재판부 판단에 따라 국민참여재판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한다.

국민참여재판은 일반 시민인 배심원들이 직접 법정에 나와 참여하는 특성상 다른 재판처럼 여러 기일에 걸쳐 진행하기 어려운 부분 때문에 늦은 시각까지 이어지더라도 하루만에 재판을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날 역시 오전 10시에 시작된 재판 절차가 오후 11시에 가까운 시각에야 종료됐다. 그만큼 재판 도중 배심원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지거나 검찰 및 변호인 측의 증인신문 및 증거조사가 비교적 성급하게 이뤄질 가능성도 있지만 국민참여재판 진행으로 기대할 수 있는 효과도 있다.

이번 사건은 B씨와 불륜 관계인 40대 피해자 여성과 B씨 간 성관계 영상을 빌미로 C씨가 피해자를 협박했다는 혐의의 재판이었는데 C씨가 혐의를 벗고 무죄를 받았다.

재판장이 검찰의 구형인 징역 1년 대신 배심원들의 만장일치 평결로 나온 무죄 의견을 받아들여 판결했다. 해당 성관계 영상을 피해자 동의없이 촬영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B씨에겐 징역 1년형(검찰 구형 2년, 배심원 5명 〃 1년)이 내려졌다.

C씨 변호인은 “폐지된 간통죄로 보면 피해자인데 협박죄 가해자로 오해받을 상황이라 국민참여재판을 하게 됐다”며 “피해자에게 영상을 보여주려 한 건 남편과의 외도를 알게 됐음에도 원만하게 관계를 풀어나가려고 사회적 통념상 분노를 표했을 뿐 협박은 아니었다”는 취지로 이날 변론을 이어갔다.

한편 대법원에 따르면 전국 법원 기준으로 국민참여재판의 실제 진행률은 지난 2012년 40.5%(756건 접수 중 274건 진행)에서 2022년 11.3%(811건 〃 중 92건 〃)으로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범죄 유형별로는 ‘살인 등(51.5%)’ 혐의와 관련해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하는 비중이 가장 높았고 그 뒤를 ‘상해 등(39.6%)’, ‘강도 등(38.1%)’, ‘성범죄 등(20.3%)’이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