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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이 책이 200쇄 이상 출판됐다는 건 부끄러운 기록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 저자 조세희는 2008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난쏘공'이 더는 독자들에게 공감되는 이야기가 아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의 염원과는 달리 난쏘공은 2017년 한국문학 작품으로는 최초로 300쇄를 돌파했고 아직도 우리나라 최고의 스테디셀러로 손꼽힌다. 난쏘공의 시대배경은 1978년. 당시 힘없는 노동자들은 상습적인 임금체불을 당하거나 폭언과 성폭행 등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렸다.

강산이 변해도 4번 이상 변한 2024년. 수많은 노동자들은 여전히 임금체불에 시달리고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순전히 노동자들의 피, 땀, 눈물로 최빈민국에서 선진국 반열에 오른 우리나라지만 찬란한 국가 발전 속 난장이들이 겪는 노동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지난해 임금체불을 당한 노동자는 인천에서만 4천550여 명. 같은 시기 건설현장 등에서 사망한 중대재해만 34건이 발생했다. 최근 인천에선 한 사회복지사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사망하고 굴지의 대기업에서조차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렸다고 응답한 직원이 절반이 넘은 설문조사가 나왔다.

1970년대 우리는 '잘 살아보세' 명분 앞에 노동자 개인의 희생에 눈감았다. 선진국인 오늘날의 우리는 어떤 명분이 있기에 수많은 난장이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노동 집회에 참석한 이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보너스 인상 등 거창한 요구가 아닌 '노동자로서 누려야 하는 최소한의 권리 보장'이었다. 돌림노래로 반복되는 '노동자의 권리 보장' 외침이 지속되는 이상 난쏘공 인기는 50년이 흘러도 여전할 것임을 확신했다.

"힘없는 우리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취재 중 그들의 외침을 들은 게 전부였다. 엄혹한 노동현장의 문제를 해결해줄 힘도, 능력도 없었지만 노동자들은 경청해줘서 고맙단 진심 어린 마음을 매번 표현했다. 2024년 난장이들의 슬픈 기록은 지난해보단 짧기를 바란다.

/이상우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beewoo@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