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 합병·회계 부정 등의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3년 5개월 만에 이 회장과 삼성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 해소에 비로소 청신호가 켜진 것이다. 대규모 투자 등 이재용 회장이 새로운 삼성을 만드는 동력이 생겼다는 평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는 5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 조종,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초 검찰은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한 바 있다. 앞서 이 회장 등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이 회장이 최소 비용으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추진한 부정 거래와 시세 조종, 회계 부정 등에 관여한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다.

이 회장 측 변호인은 선고 공판 이후 “현명한 판단을 내려준 재판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이번 판결로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직접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검찰의 항소 가능성이 남아있지만 1심에서의 무죄 판결로 수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가 해소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의 경영 행보가 한층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대규모 투자 결정이나 M&A 추진 등이 단행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삼성의 대형 M&A는 지난 2017년 미국의 전자·전기장치 회사 하만을 인수한 게 사실상 마지막이었다. 이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 역시 빨라질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4대 그룹 총수 중 미등기 임원은 이 회장이 유일하다.

이 회장의 무죄 판결에 재계에서도 환영 의사를 밝혔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적극 환영한다”면서 “이번 판결은 첨단산업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과 이제 막 회복세에 들고 있는 우리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고현 한국무역협회 전무이사는 “최근 반도체 수요가 회복되고 첨단산업 투자에 대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현재 여건을 감안하면 다행”이라고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삼성이 경영상 불확실성을 벗어나 적극적인 투자와 일자리 창출 등 국가 경제 발전에 더욱 매진해줄 것을 기대한다”는 입장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