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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민철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사람을 죽인 두 사람에 대한 1심 선고가 한날 한시에 나왔다. 지난해 1월19일 법원을 출입한 지 20일도 안 됐을 때다. 당시에는 수많은 재판 중 어떤 재판을 우선순위에 두고 챙겨야 할지 판단조차 못했다.

나는 취재진이 많은 쪽을 택했다. 대학교 캠퍼스에서 동급생을 성폭행하려다 창밖으로 떨어트려 숨지게 한 20대 남성에 대한 판결이었다. 사회적 공분을 산 사건이었다. 재판장은 선고 직전 '성폭행 사건'이라는 점을 취재진에게 강조했다.

법원은 징역 17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재판이 끝나고 차근차근 곱씹으며 기사를 썼다. 재판장의 당부, 고인과 유족, 지인들이 느꼈을 고통과 충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럭저럭 마감을 할 때쯤 옆 법정 소식이 들려왔다. 뇌병변장애인 딸을 살해한 엄마에 대한 판결이었다. 딸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심했다. 말도 거동도 먹는 것도 홀로 하기 어려웠다. 엄마는 그런 딸을 38년간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그러다 비극이 찾아왔다. 딸이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은 것이다.

엄마는 아픔에 시달리는 딸을 지켜만 볼 수 없었다. 모녀는 '힘들다'라는 상투적인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결국 엄마는 딸과 함께 세상을 등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38년 전 사랑으로 받은 딸을 직접 떠나보냈다. 딸의 뒤를 따르려던 엄마는 극적으로 구출돼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섰다. 법원은 엄마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선처했다. 징역 12년을 구형했던 검찰도 이례적으로 항소를 포기했다.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들에게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역할을 분명히 알려준 판결이었다. 이 법정을 가지 못했던 터라 뒤늦게 법원에 판결문을 신청해 기사를 썼다.

법원을 들락거리다 보니 이 두 사건이 이따금 떠오른다. 기자들에게 성폭행 사건임을 유의해달라던 재판장. 법정에서 딸에게 미안하다고 오열했던 엄마. 다양한 삶의 비극이 오가는 그날의 법원으로 돌아간다면 어느 법정에 갔어야 했을까.

/변민철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