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일가족 전세사기’ 의혹 주범인 정모 씨 일가가 이 사건 재판의 첫 공판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혐의 인정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정씨 등의 구속기한이 벌써 약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데다 검찰의 증거자료 절반 이상이 진술에 따른 것이어서 자칫 피고 측의 증거 부동의가 많을 경우 재판이 길어질 우려도 있다.
22일 오후 2시 수원지법 형사11단독 김수정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정모 씨와 그의 아내 A씨, 아들 B씨의 사기 등 혐의 사건 첫 공판에서 정씨 일가 측 변호인은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재판부의 질의에 “증거자료 열람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을 내기 어렵다”고 답했다.
180페이지 분량의 증거목록만 넘겨 받았을뿐 2만페이지에 달하는 증거자료는 정작 등사하지 못해 혐의 인정 여부 결정을 위한 검토를 못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자료 열람 및 복사에)충분히 협조한 걸로 안다. 등사가 늦어지는 부분에 대해선 전달받은 바 없다”며 “(요청)말씀하시면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다.
다만 검찰의 증거자료 가운데 절반 이상이 진술에 따른 증거로 알려져 피고인 측의 진술증거 부동의가 많을수록 재판이 길어질 가능성이 있다.
피고인 측에서 부동의하는 진술증거가 발생하는 만큼 검찰 측은 재판부에 요청해 해당 증인을 법정에 불러 다시 진술하도록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정씨 일가 측 변호인은 이날 “검찰의 증거자료 가운데 1만페이지 이상이 진술증거”라며 “아직 복사하지 못했지만 자료를 건네받는대로 혐의 인정 여부와 증거 부동의 여부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정씨와 그의 아내 A씨는 이미 구속된 지 3개월에 가까워지는 상황이라 만약 재판이 앞으로 3개월 후까지 이어지면 검찰 측은 재판부에 구속영장 발부 재요청을 검토해야 할 수 있다.
정씨와 A씨는 지난해 12월 1일에 구속돼 오는 6월 1일이면 구속기한이 만료된다.
한편 이 사건으로 전세보증금 미반환 등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은 이날 첫 공판 진행에 앞서 수원법원종합청사를 찾아 ‘악성 임대인 엄벌 및 제도개선 촉구’를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 사건 피해자이자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경기대책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 이재호 위원장은 “피해자들은 일상이 무너지고 하루하루를 출구없는 절망 속에 보내고 있다”며 “악성 임대인 정씨 일가를 엄벌해 피해자들이 한 줄기 희망을 갖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밖에 다른 피해자와 대책위 관계자 등 30여 명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와 더불어 부동산 시장 전면 개편에 나서달라”고 요구했다.
한편 정씨 일가는 지난 2021년 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일가족 및 임대 업체 법인 명의를 이용해 수원시와 화성시 일대에서 800세대가량의 주택을 취득한 뒤 임차인 214명으로부터 전세 보증금 225억원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특히 정씨는 대출금이 700억 원을 넘는 채무 초과 상태에서도 구체적인 자금 관리 계획 없이 ‘돌려막기’ 방식으로 임대 계약을 계속한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