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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의 한 다세대주택 밀집촌. /경인일보DB
 

지난 한 해 경기도에서 인·허가를 받은 주택 90%는 아파트였다. 2005년 이후 최대다. 앞으로 지어지는 집 10채 중 9채 이상이 아파트일 것이라는 얘기다. 머지않아 아파트가 집이라는 일반명사를 대체할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이는 아파트 거주 수요가 늘어난 데서 비롯된다. 지난해 경기도 주택 매매 거래에서도 10채 중 7채꼴은 아파트였다. 수요에 따라 공급이 늘어나는 것은 시장에선 당연한 일이니, 주택 건설업계에서 이 같은 흐름을 충실히 따라간 결과다. 건설 경기가 바닥을 친 상황에서 수요가 보장돼 비교적 안전한 아파트 건설에 몰두하는 건축 경향이 짙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수요자 입장에선 재산으로서의 집값 방어 문제, 생활의 편리함 등에 더해 지난 2022년부터 수도권 곳곳에서 번진 빌라·오피스텔 전세 사기 사태에 따른 불안감이 아파트 선호도를 굳건히 하는 데 한몫을 했다. 상대적으로 빌라 등 다세대·연립주택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지난해 전체 주택 매매 거래에서 빌라 등 다세대·연립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불과했고, 인·허가에선 4%에 그쳤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빌라는 차츰 사라지고 아파트만 빼곡해진다는 점은 주택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돈 없는 청년이나 신혼부부 등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는 집이 서서히 사라진다는 뜻이다. 빌라 월세방에서 차곡차곡 돈을 모아 아파트로 진입하는 '주거 사다리'가 첫 단계부터 흔들리고 있다. LH 등이 조성하는 공공임대주택으로 눈을 돌려봐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 공공임대주택도 결국 건설사들이 지어야 하는데, 경기 침체로 건설업계 전반이 잔뜩 몸을 웅크리면서 공공임대주택 조성에 참여했다가도 중도 포기하는 업체들이 늘어나서다. 이 때문에 지난해 LH와 각 지자체의 공공임대주택 착공은 반토막 나기도 했다.

수요자도, 공급자도 원해 아파트가 많아지는 것을 어쩌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집은 소득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재산 그 이상인, 삶의 필수 요소다. 시장 흐름에만 맡기지 않고 정부가 정책적으로 집 문제를 관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불황은 가장 아래에서부터 짙어진다. 건설 경기가 얼어붙은 지금도 어김없이 그렇다. 주거 사다리의 두 축이 모두 흔들리고 사다리에 첫발을 디딜 돌이 사라지는 지금, 정부의 관심과 대책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