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된 내용만 보고 사할린동포들의 '환호의 목소리'가 들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젠 고국 땅에서 자녀와 함께 여생을 보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차 있을 것이라고 섣불리 예단했다.
언제나 그렇듯, 기자의 예상과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경기도내 거주 중인 사할린동포 1천561명 중 700여 명, 즉 가장 많은 사할린동포들이 모여 살고 있는 안산의 고향마을에서 만난 사할린동포들은 법 개정과 무관하게 자녀의 귀국을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주귀국 대상자를 위한 공공임대주택이 마련되지 않아 귀국은 더뎌지고 있었고, 이미 귀국한 이들은 같은 집에 살고 있어도 가족관계증명서 상 가족으로 인정되지 못한다. 부모가 사망한 경우 영주귀국 대상자로 선정되지도 못하는 이들은 아직도 사할린에서 고국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아픈 현실도 전해들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사할린으로 건너가 겪게 된 수모들, 그곳에서의 차별받고 억압받던 기억들, 고국으로 오기까지 기다림의 여정들…. 부끄럽게도 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나서야 이들이 왜 그토록 고국으로 돌아오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기자에겐 너무 당연했던 '고국이 주는 안정감'이 그들에겐 절실했던 것이다.
"다들 그렇게 사는데…. 불편해도 그냥 사는거지 뭐"라는 이경분 할머니의 말은 취재 중 들었던 가장 안타까운 말이면서, 이들에 대한 '찾아가는' 지원의 필요성을 부각시켜주는 말이었다.
광복 이전과 이후 태생으로 분류되는 사할린동포 1세대와 2세대의 고령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더 늦기 전에 사할린동포를 위해 지원을 발굴해야 하는 이유다. 안정감 하나를 바라보고 귀국한 이들의 소박한 요구를 이제는 국가가 지켜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영지 정치부 기자 bbangz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