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앞세운 유통 마케팅 쉼없이 이어져
지자체·공공기관 각종 정책 홍보용도 사용
웃는 순간이 '바라볼때뿐'이라는게 서글퍼
많은 이들은 이미 푸바오가 태어났던 무렵부터 그 신기한 경험을 해온 듯하다. 국내에서 자연 번식을 통해 처음으로 탄생한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7월에 태어났다. 언제 정체불명의 전염병에 감염될지 모른다는 공포,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만남은 단절된 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불편함, 일상에서 접한 모든 사람과 사물이 감염원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 무엇보다 언제 이런 사태가 끝날지 알 수 없다는 막막함 등이 한데 섞인 우울한 시기였다.
그 때 선물처럼 등장했던 게 아기 판다 푸바오였다. 연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는 푸바오의 성장기를 많은 사람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봤다. 푸바오의 귀여운 외형과 앙증맞은 몸짓, 서툴러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며 자라나는 모습에 깔깔거리며 웃거나 왜인지 눈물을 흘리면서 잠시나마 불안감과 우울감을 떨쳤을 것이다. 감염병과의 오랜 싸움, 일상 속 크고 작은 전쟁에서 푸바오는 꽤 적지 않은 이들을 구해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온라인상에선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는 한 누리꾼이 '푸바오를 보면 힐링된다고 했더니 관련 영상을 더 많이 보라는 처방이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단 5분간 푸바오를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추운 날씨 속 5시간가량 기꺼이 줄을 선 모습은 미국 CNN 등 해외 유명 언론에서도 조명할 정도로 이례적인 광경이었지만, 이런 '푸바오 열풍'은 그만큼 이 귀여운 아기 판다가 가진 놀라운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의 동물 행동학자 콘래드 로렌츠는 1943년 아기가 가진 여러 귀엽고 사랑스러운 요소들이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는 '베이비 스키마' 이론을 주창한 바 있다. 귀여운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호감을 느끼고 스트레스가 줄어 보다 긍정적인 감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는 말도 이런 베이비 스키마 이론과 맞물려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경기침체까지 더해진 최근 몇년 간 푸바오 외에도 '귀여움'을 찾는 움직임은 다양하게 이뤄져 왔다. 유통가에서도, 행정영역에서도 이런 수요를 충실히 좇는 모양새다. 캐릭터 스티커가 동봉된 '포켓몬빵'이 오래도록 품귀현상을 보였고, 잔망루피나 산리오 캐릭터 등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캐릭터를 앞세운 유통 마케팅은 분야나 브랜드를 막론하고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다. 캐릭터가 빠지면 마케팅이 어려울 정도라는 말까지 들려올 정도다. 이는 공공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에선 저마다 몇년 전부터 귀여운 형태로 캐릭터를 새롭게 만들거나 재정비해 각종 정책을 홍보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경기도만 해도 대부분의 시·군이 자체 캐릭터를 보유하고 있다. 강아지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의 모습을 담은 온라인 콘텐츠가 인기몰이를 하는 데 더해, 코로나19 장기화 여파 등으로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급증하면서 관련 산업이 팽창한 것 역시 맥을 함께 한다.
날로 귀여움에 주목하는 경향이 짙어지는 것은 일상과 사회가 점점 더 혼란하고 우울해진다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저항 없이 마음을 열고 잠시나마 웃을 수 있는 순간이 단지 귀여운 동물이나 캐릭터를 바라볼 때뿐이라는 것은 어쩐지 서글픈 일이다. 그럼에도 하루를 견디고, 또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에 세상을 구하는 귀여움의 위대함에 기댄다. 오늘도 어김없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푸바오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강기정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