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서 화재… 거주하던 남매 숨져
"농번기때 숙식… 남 일 같지 않아"
소방시설법 제외, 규모 파악 안돼
'야간 취침 금지' 일방정책 철회도
여주시의 한 주거용 비닐하우스에서 불이 나 거주하던 남매가 숨지면서 비닐하우스 형태의 주거지에 대한 부실관리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26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42분께 여주 대신면에 있는 200㎡ 규모의 주거용 비닐하우스 1개동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로 비닐하우스에 거주하던 60대 남성 A씨와 50대 여성 B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남매 사이로 별다른 동거 가족이나 자택 없이 농장 직원 20대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와 함께 생활했다.
비닐하우스 10개 단지에서 화훼 농사를 짓던 이들은 이날도 새벽까지 일하다가 화마에 휩쓸려 참변을 당했다. 외국인 직원은 창문을 열고 탈출했지만, 남매는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채 사망했다.
이들이 살던 주거용 비닐하우스는 농막(가설건축물)으로 농지법 시행규칙 상 주거 목적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이런 농막은 소방시설법 등 안전과 관련한 규제 적용 대상이 아닌 것은 물론, 지자체에선 지난 2022년 4월 가설건축물 등록 신고 이전에 세워진 농막의 경우 정확한 수요조차 파악하지 못해 사고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화재가 난 비닐하우스 역시 과거에도 한 차례 화재가 발생했지만 별다른 관리 없이 다시 지어져 주거지로 사용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농막은 화재 발생 주변 지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인근에서 화훼농사를 짓는 윤모(63·여)씨는 "이 동네 대부분의 농사짓는 사람은 따로 집이 있어도 요즘같은 농번기 땐 농막에서 숙식을 해결한다"며 "최근까지 연락하고 일도 함께한 사이였는데 남의 일 같지 않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농막의 문제는 과거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앞서 지난 2020년 12월 포천시에서 숨진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역시 농막에서 생활하다가 사망했다. 당시 날씨는 영하 18도를 웃돌았다.
이처럼 불법으로 사용되는 주거용 비닐하우스에서 해마다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음에도 관할당국은 현재까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도내 한 지자체 관계자는 "농막과 관련된 부서가 건축과와 농업정책과, 일선 읍면동 행정복지센터 등이 얽혀 있다 보니 관리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며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에 한해서 단속을 나가지만 모든 농막의 주거 용도를 파악하고 다 관리하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5월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지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농막의 형태 기준과 설치요건 등을 보완할 계획이었지만, 현실적인 요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야간 취침만 막는다는 농촌 여론의 비판이 이어져 철회됐다.
이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개정안 철회 이후 효과적인 농막 건축 기준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 개정안을 재검토 중"이라면서도 "(구체적인 향후 계획에 대해선)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고 밝혔다.
/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