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제출한 개정안 국회 계류
의료현장 통일된 규정없는 실정
지난해 안양에 사는 30대 여성 김정아(가명) 씨는 결혼을 앞두고 동거하던 남성으로부터 데이트 폭력을 당해 이별을 결심했다. 당시 김 씨는 임신 12주가 넘어가고 있었고 경제적 여건 등을 고려해 인공 임신 중절을 선택했다. 그러나 임신 중기를 앞둔 김 씨를 받아주는 산부인과는 찾기 어려웠다. 겨우 찾은 병원들은 각기 금액이 달랐고,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닌 비급여 진료 항목이라 100만원 가까이 되는 가격도 부담이었다.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김 씨는 지인을 통해 돈을 빌려 수술을 진행했다.
낙태죄 위헌 결정이 난 지 5년이 넘었지만, 관련 의료적 제도 정비는 물론 관련 법안조차 개정되지 않아 김씨와 같은 임신중절을 원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행정적 지원이나 안내 없이 여전히 스스로 모든 것을 알아보는 실정이다.
지난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낙태죄 처벌 조항이 임신부의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이후 개선 입법 기한(2020년 12월 31일)이 넘어가도록 해당 법령은 개정되지 못한 채 2021년 1월부터 해당 법률은 효력을 잃었다.
12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인공임신중절 합법화를 위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법무부, 식약처 등 유관부서와 함께 지난 2020년 11월 모자보건법과 형법 등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다. 해당 개정안은 임신 14주 이내에 임신한 여성 본인 의사에 따라 일정한 사유가 없어도 임신중절이 가능하고, 15~24주 이내에는 유전적 질환, 성범죄에 의한 임신 등 모자보건법에서 인정하는 사유 혹은 사회적 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 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그러나 해당 법률이 통과되지 못함에 따라 현행법상 인공임신중절은 합법도 비합법도 아닌 상태에 놓였다. 이러다 보니 의료 현장에는 통일된 규정이 없이 병원별로 달라 임신중절을 원하는 임신부에게 혼선을 주고 있다.
실제 수원, 성남 등 도내 산부인과에 인공임신중절을 문의한 결과 수술 가능한 임신 주 수와 가격 등이 각각 상이했다. 수원의 한 산부인과는 “13주가 넘어가면 다른 병원을 안내해드리고 있다”며 “주 수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상담 진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법 개정에 우선해 제도부터 손볼 순 없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인공임신중절은 여전히 각계각층에서 논의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라 행정당국에서 제도를 만들려면 최소한의 법률적 방어책은 존재해야 한다”며 “22대 국회가 출범한 만큼 개정안 재발의를 통해 입법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