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치르던 어느 날, 쉬는 시간에 들려온 소식이었다.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었던 터라 피곤함도 몰려오고 온전히 시험을 마쳐야 할 생각에 심란한 마음을 애써 누른 채 시험에 집중했다.
"애들이 다 구조됐대", "구조된 게 아니라 아직 배 안에 있다던데", "다음주면 수학여행인데 우리 어떡해". 시시각각 달라지던 소식에 교실은 소란스러울 뿐이었다. 시험을 마치고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마주하니 수학여행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 후 적어도 1년 동안은 온 국민의 시선이 진도 앞바다에 있었다.
충격은 어느덧 무뎌졌고, 기억은 흐려져만 갔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진상규명, 관계자 엄벌을 외치던 목소리는 서서히 묻혔고 또래인 나도 중간고사를 보던 그때만을 회상할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는 펜스에 가려진 채 7년째 우두커니 서있다. 곳곳에 구멍이 나고, 모자이크처럼 철판이 덧붙여지고, 붉게 녹슨 채로.
원자폭탄의 상흔을 안고 있는 히로시마는 당시 피폭당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원폭돔, 관광객과 시민들이 공존하는 평화공원, 조용히 앉아서 기도하고 싶은 추모객을 위해 마련한 추도관까지 '추모'와 '기억'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갖췄다. 어쩌면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부러웠다.
진도에서 만난 유가족 김지은씨는 사람들이 언제나 소풍을 즐기면서도 기도하고 싶을 때 기도하러 오는 공간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했다.
해양수산부도 세월호를 원형보전하면서 4·16기억관, 생명공원을 조성하는 국립세월호생명기억관 건립사업을 추진 중이다. 다만 완공까지 5년이 더 남았다.
10년 전 같이 수학여행을 떠나려던 또래가 성인이 되고, 30대가 되고서야 온전히 희생자들에게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 이제는 더 이상 미뤄지지 않고 '일상 속의 추모'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야하지 않을까.
/이영선 정치부 기자 zero@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