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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민철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춥지 않을 줄 알았다. 20년을 경기도 포천의 혹한에 살았으니 인천의 초겨울 추위쯤이야. 영상과 영하를 오가는 애매한 날씨에 채비를 덜 하고 취재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부평의 한 공원에서 그녀를 만났다.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44살의 여성은 "카페라도 들어가자"는 내 제안에 "괜찮다"며 손사래쳤다. 나름의 배려 멘트였다. 나는 추위를 타지 않으니 인터뷰 시간쯤은 버틸 수 있었다.

그녀가 이혼한 전 남편에게 10년 동안 받지 못한 양육비는 9천여만원. 열 번의 겨울을 거치며 서러움과 억울함 그리고 미안함에 이런 추위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몸이 됐구나 싶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인천지검 앞에서 1인 시위도 벌인다는 그였다. 문제는 나였다. 인터뷰가 길어지자 손은 얼어갔고 코에선 콧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원래도 악필인데, 꽁꽁 언 손 때문에 메모장에는 정체불명의 지렁이가 기어다녔다. '화룡점정'으로 그해 첫눈까지 내렸다. 겨우 인터뷰를 마치고 차로 돌아와 잠시 몸을 녹였다. 그제서야 아이들과 친정 부모님에게 미안하다며 흘린 눈물이 다시금 떠올랐다.

우리가 다시 만난 건 3월 말이다. 양육비를 미지급한 혐의로 기소된 남편의 형사재판 선고 날이었다. 흩날리던 눈이 어느새 꽃이 됐다. 그녀는 두 손을 꼭 모으고 "제발"을 외쳤다.

재판장은 실형을 선고했다. 비록 징역 3개월이었지만, 양육비 미지급 부양 의무자에 대한 첫 실형 선고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이때도 그녀는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법정 밖으로 나와 지난 겨울을 회상했다. "우리 진짜 추운 날 만났었는데, 이제 꽃이 폈네요." "기자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여전히 어떤 부모는 이런 추위를 버티고 있다. 손발이 얼고 콧물이 흘러도 그저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견딜 뿐이다. 어찌어찌 찾아온 봄꽃은 남들보다 더 빨리 질 것이다. 머지 않은 날, 이들이 온전히 겨울바람을 느끼고, 꽃을 눈에 담길 바란다.

/변민철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