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된 절차가 낳은 '병원접수 무한대기'


무인수납기도 안돼 '창구 앞 혼란'

의료진, 제도·앱설치 등 안내 진땀
의협 "홍보없이 성급한 도입"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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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등 의료기관 진료 시 신분증이 필요한 개정 국민건강보험법이 시행된 20일 오전 경기도내 한 대형병원 접수창구에 신분증 필수 지참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4.5.20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15분이면 되는 걸 1시간째 기다리고 있어요.”

20일 오전 11시께 수원시 팔달구의 한 종합병원. 1층 접수 창구 앞에는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안내를 돕던 직원 A씨는 “원래 월요일이 가장 바쁜 건 맞지만, 평상시보다 1.5배 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혈압약 처방을 받으러 온 김모(53·여)씨는 예약시간 ‘10시 10분’이 적힌 표를 보여주며 한숨을 쉬었다. 평소 무인수납기기를 사용했지만, 이날은 신분증 확인 절차로 수납창구를 이용해야 해 대기시간이 길어진 것이다. 김씨는 “3개월에 한 번 피 뽑고 약 타는데 진료는 5분 만에 끝난 반면 수납 대기에만 벌써 1시간이나 지났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통과된 국민건강법 개정에 따라 병원 등 의료기관 진료 방문 시 신분증 지참이 필수가 된 이날 일선 현장에서는 평소보다 대기시간이 늘어나며 환자들이 불편을 겪었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통상적으로 접수절차를 거치지 않고 예약증만 받은 뒤 진료실로 향하는데, 진료가 끝난 뒤 신분증 확인 절차로 무인수납기기 이용이 안 되면서 창구 이용객이 늘었기 때문이다.

다리를 다쳐 통원치료를 받는 아버지의 수납 절차를 도우러 왔다는 김모(30대·여)씨도 진료를 마친 뒤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오늘은 무인수납기기 수납이 안 된다고 해서 속절없이 기다리고 있다”고 털어놨다. 대기번호 ‘370번’을 받은 그의 앞으로 이미 55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환자들이 신분증 없이 방문하는 경우가 잦은 동네의원 역시 이날 혼란을 빚었다. 전화 예약 접수 시 신분증 지참을 당부하는 등 사전 안내에 힘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날도 여전히 신분증 없이 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많았고, 이들은 신분증을 대신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휴대전화에 설치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 중에는 특히 어르신들이 많아 간호사들이 앱 설치를 돕느라 진땀을 뺐다.

용인 수지구의 한 정형외과에서 만난 간호사 오모(40대)씨는 “한 달 전부터 병원을 찾는 환자들에게 꾸준히 안내했는데도 오전에 병원을 찾은 환자 3명 중 1명 꼴로 신분증이 없었다”며 “이 경우 ‘모바일건강보험증’ 앱을 깔도록 일일이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들은 정부가 충분한 홍보 없이 제도를 도입해 의료진이 관련 업무와 민원을 떠안고 있다고 토로한다. 성혜영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정부가 시범사업이나 정책홍보 없이 본인확인 강화제도를 도입해 일선에 있는 의료진들이 앱 설치 업무를 도맡는 것도 모자라 환자들의 불만까지 떠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건강보험 자격 도용 사례를 막기 위해 이번 조치를 시행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건강보험증 대여·도용 적발 사례는 전국적으로 지난 2021년 3만2천605건, 2022년 3만771건, 2023년 4만418건에 이르는 등 꾸준히 증가했다.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