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 서곡·협주곡없이 교향곡 8번만 연주
이병욱 감독 3악장 제외하곤 긴호흡 지양
'브루크너 休止' 게네랄파우제 진한 여운
국내에서도 인천시립교향악단을 비롯한 오케스트라들이 후기 낭만주의 음악의 정점에 있는 이 위대한 작곡가를 조명하고 있다. 이병욱이 지휘하는 인천시립교향악단은 지난달 26일 아트센터 인천(ACI)에서 열린 제421회 정기연주회와 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24 교향악축제' 폐막 무대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연주했다. 이달 17일 ACI에서 이어진 제422회 정기연주에선 브루크너의 교향곡 8번을 선보였다.
인천시향은 2017년 4월에 열린 제362회 정기연주회에서 당시 예술감독인 정치용의 지휘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선보인 바 있으며, 이병욱 예술감독과 함께 2022년 제401회 정기연주회에서 브루크너의 마지막 교향곡인 9번을 처음으로 연주했다. 이번에 연주한 교향곡 8번의 경우 인천시향의 초연 무대였다. 작곡가 탄생 200주년에 교향악 예술의 최고봉을 이루는 8번을 인천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다.
1887년 완성된 브루크너의 여덟 번째 교향곡은 개정을 거쳐서 1890년 두 번째 버전이 완성됐으며, 1892년 12월 한스 리히터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에 의해 초연됐다. 한국 초연은 그로부터 79년 후인 1971년 9월20일 서울에서 홍연택이 지휘하는 국립교향악단(KBS 교향악단의 전신)에 의해 이뤄졌다. '소우주'인 이 대곡을 온전히 구현하기까지 지휘자와 단원들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로 인해, 국내에선 초연 이후 30년 넘게 이 작품을 실연으로 접할 수 없었다. 2000년대 들어서 내한하는 해외 오케스트라들과 국내 소수의 단체가 연주했으며, 인천시향도 이번에 그 반열에 합류하게 됐다.
지난 17일 ACI에서 열린 인천시향의 프로그램은 서곡이나 협주곡 없이 브루크너 교향곡 8번으로만 구성됐다. 브루크너 교향곡 도입부에 등장하는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함께 주제 선율까지 매끄럽게 제시하며 연주회를 시작했다. 이병욱 예술감독은 3악장을 제외하고선 긴 호흡은 지양하는 모습이었다. 주제들의 변화하는 형태와 성격에 맞춰서 작품을 구현했다. 현악이 주도하는 팽창력 있는 음향도 시의적절하게 변모하면서 기반이 탄탄한 브루크너를 들려줬다. 세밀함에서 아쉬운 대목도 있었지만, 장중하게 부풀어 오르는 메이저 시퀀스의 감흥과 함께 '브루크너 휴지(休止)'로 불리는 게네랄파우제는 청자에게 진한 여운도 선사했다. 4악장의 코다(Coda)를 끝으로 80분 가량의 연주가 마무리되자 청중은 19세기 후반의 위대한 작곡가와 가교 역할을 훌륭히 해낸 인천시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2016년 6월 인천시향의 창단 50주년에 맞춰 경인일보는 인천시향이 50년간 정기 연주회에서 선보인 레퍼토리들을 분석한 바 있다. 이번 브루크너 교향곡 8번 인천 초연 무대를 본 후 당시 자료를 다시 찾아봤고, 눈에 띄는 초연 무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2대 상임지휘자였던 고(故) 임원식이 1987년 제113회 정기 공연에서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첫 연주하면서 레퍼토리 확대를 꾀했다. 제4대 지휘자인 금노상이 부임하면서 인천시향은 4관 편성 오케스트라로 규모를 불렸고, 이에 맞춰 후기 낭만주의의 거성들인 구스타프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들을 잇달아 선보였다. 1995년 제178회 정기 공연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후안'을 시작으로 '알프스 교향곡',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이 인천에서 첫 선을 보였다. 제7대 정치용 예술감독은 인천시향 50주년 기념 무대였던 제354회 정기 공연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를 첫 연주했다. 이는 이병욱 예술감독의 초연 무대로 이어지고 있다.
클래식팬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다양한 레퍼토리로 구성될 인천시향의 다채로운 무대들을 응원한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