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남기려고 구매해 옷에 부착
"보호 제도·플랫폼 지원 필요"
"갑질 증거 남기려고 바디캠 달았습니다."
수원에서 배달라이더로 일하는 최모(27)씨는 지난해 11월 배달 콜을 잡고 음식 준비 예정 시간에 맞춰 매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포장돼 있어야 할 음식은 보이지 않았다. 최씨는 점주에게 "음식이 언제 나오냐"는 짧은 질문을 했지만, 돌아온 건 반말과 욕설이 섞인 폭언이었다.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없어 경찰에 신고도 못했고 그 후부터 최씨는 바디캠을 부착한 채 배달 일을 하고 있다. 최씨는 "또 갑질을 당했을 때 증거를 모으려고 바디캠을 사서 옷에 달고 일한다"고 털어놨다.
배달 노동자들이 점주와 고객들로부터 갑질과 폭언에 내몰려 있어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10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와 정의당 이은주 의원실이 배달라이더 1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상당수 배달라이더가 점주와 고객의 갑질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45.2%는 '고객에게 폭언·폭행을 겪었다'고 답했으며 '점주에게 폭언·폭행을 겪었다'고 답한 배달라이더는 51.9%로 절반을 넘겼다. 고객의 갑질은 고의적 거짓말(32.7%), 반말(28.8%), 직업 비하(17.3%) 순으로 조사됐다. 점주 갑질은 주로 조리 대기 상황에서 일어났는데, 반말(31.7%)과 욕설(17.3%), 부당업무 강요(16.3%) 등이었다.
최씨의 사례와 같은 상황을 경험한 배달 노동자들은 갑질과 폭언에 대비해 바디캠 착용이 필수라는 자조섞인 이야기도 털어놓고 있다. 배달라이더 10년 경력의 주모(48)씨는 "바디캠은 라이더가 겪을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보험 같은 역할을 한다"며 "바디캠이 없는 라이더가 많은데 억울한 일을 안 당하려면 바디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윤경 라이더유니온 경기지회 사무국장은 "바디캠은 점주와 고객의 갑질·폭언 등의 피해 사실을 증명할 수 있고, 또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며 "갑질로부터 배달라이더를 보호하는 제도와 배달플랫폼·배달대행사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규준기자 kkyu@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