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남기려고 구매해 옷에 부착
"보호 제도·플랫폼 지원 필요"


배달노동자 관련(사회부) (3)
고객들의 갑질에 바디캠으로 대응하는 배달라이더들. 2024.6.2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갑질 증거 남기려고 바디캠 달았습니다."

수원에서 배달라이더로 일하는 최모(27)씨는 지난해 11월 배달 콜을 잡고 음식 준비 예정 시간에 맞춰 매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포장돼 있어야 할 음식은 보이지 않았다. 최씨는 점주에게 "음식이 언제 나오냐"는 짧은 질문을 했지만, 돌아온 건 반말과 욕설이 섞인 폭언이었다.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없어 경찰에 신고도 못했고 그 후부터 최씨는 바디캠을 부착한 채 배달 일을 하고 있다. 최씨는 "또 갑질을 당했을 때 증거를 모으려고 바디캠을 사서 옷에 달고 일한다"고 털어놨다.

배달 노동자들이 점주와 고객들로부터 갑질과 폭언에 내몰려 있어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10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와 정의당 이은주 의원실이 배달라이더 1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상당수 배달라이더가 점주와 고객의 갑질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45.2%는 '고객에게 폭언·폭행을 겪었다'고 답했으며 '점주에게 폭언·폭행을 겪었다'고 답한 배달라이더는 51.9%로 절반을 넘겼다. 고객의 갑질은 고의적 거짓말(32.7%), 반말(28.8%), 직업 비하(17.3%) 순으로 조사됐다. 점주 갑질은 주로 조리 대기 상황에서 일어났는데, 반말(31.7%)과 욕설(17.3%), 부당업무 강요(16.3%) 등이었다.

최씨의 사례와 같은 상황을 경험한 배달 노동자들은 갑질과 폭언에 대비해 바디캠 착용이 필수라는 자조섞인 이야기도 털어놓고 있다. 배달라이더 10년 경력의 주모(48)씨는 "바디캠은 라이더가 겪을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보험 같은 역할을 한다"며 "바디캠이 없는 라이더가 많은데 억울한 일을 안 당하려면 바디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윤경 라이더유니온 경기지회 사무국장은 "바디캠은 점주와 고객의 갑질·폭언 등의 피해 사실을 증명할 수 있고, 또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며 "갑질로부터 배달라이더를 보호하는 제도와 배달플랫폼·배달대행사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규준기자 kkyu@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