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고법 설치법안' 영호남의원 주도 폐기
여야 협력커녕 같은당조차도 호흡 못 맞춰
대체로 지역현안 무관심하다는 비판 받아
부당한 간섭 벗어나려면 몸집 키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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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래 인천본사 정치부장
제21대 국회 임기 만료를 앞둔 지난 5월 '인천고등법원 설치 법안' 통과가 예상됐지만 이를 가로막은 건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 간사들이었다. 인천시민 100만명 이상이 서명한 법안을 양당 영호남 국회의원들이 주도해 폐기했다. 이 과정에서 인천지역 국회의원 전원은 철저하게 배제됐다. 일부는 양당 야합을 알면서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침묵했다는 말도 돈다. 무기력한 인천 정치의 현주소가 만천하에 드러난 '사건'이었다.

약 한 달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당시 법사위 양당 간사인 정점식(국·경남통영시고성군), 소병철(민·전남순천시광양시곡성군구례군갑) 의원은 인천고등법원 설치 근거를 담은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소위에서 다루지 않기로 합의했다. 지난 5월7일 열린 법안심사제1소위에서 양당은 약속한 대로 인천고등법원 설치 법안 심사를 '배제'시켰다. 그날 회의에서 정점식 의원은 "인천고등법원 설치에 크게 이견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해사 사건 거의 대부분이 부산법원에서 다 이루어졌다. 그런데 양 지역(인천과 부산)에서 서로 설치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인천고등법원 설치에 관해 좀 더 각 당 내부에서 의견 수렴을 하고 난 이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쉽게 말해 인천시가 '해사법원' 유치를 포기하고 부산에 양보하면 '인천고등법원 설치'를 수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논리에 민주당 법사위 소속 의원들도 동의했다. 복기할수록 찝찝함이 가시지 않고 더해진다. 양당 지도부를 인천 의원들이 차지하고 있어도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민·관이 합심해 대대적 서명운동을 벌인 지역 현안 법안이 제대로 된 심사조차 받지 못하고 폐기된 적이 있었던가 되짚어 봤지만 전례를 찾지 못했다.

해마다 예산철이면 각 정당 유력 정치인의 '지역구 예산 챙기기'가 도마에 오르는데, 특이하게도 인천 의원들은 그런 구설에 오르지 않는다.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지역구에만 매몰돼서는 안 되겠지만, 인천 의원들은 대체로 지역 현안에 무관심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10년 전에서는 인천 의원이 '인천 예산'에 찬성하지 않으면서 아시안게임 국비 증액안이 무산된 적도 있었다. 2014년 1월1일 정부 예산안을 처리하는 국회 본회의 당일, 당시 민주당 신학용 의원이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건설비 150억원을 증액한 '기금운용계획 수정안'을 동료 의원 50명 서명을 긴급하게 받아 발의했다. 신 의원은 제안설명을 통해 "이번 수정안은 인천 여야 의원 12명이 협의체를 통해 인천 사회와 약속한 최우선 과제"라며 "새 정부 들어 처음 의결된 오늘 예산이 인천시민 염원을 팽개친 최악의 예산으로 기록되지 않도록 의원 여러분 동참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인천 국회의원들조차 한뜻으로 뭉치지 못했다. 이어진 본회의장 투표에서 재석의원 277명 중 찬성과 반대가 각각 118명 동수로 나와 수정안이 부결됐는데, 기권표를 던진 41명 중 1명은 인천 지역구 의원이었다.

지역 정가에서는 '인천 의원 십여 명이 영남 의원 한 명 못 이긴다'는 말이 정설로 통한다. 얼마 전 만난 인천 한 시민단체 인사는 '인천 정치력'을 부산과 비교해 이렇게 설명했다. 부산 지역 현안은 선거 한두 번만 치르면 해결되는데, 인천은 10년이 넘도록 풀리지 않는 숙원 과제만 쌓여간다고 했다. 특정 지역이 부당하게 정치적 이득을 얻어간다는 뜻이 아니다.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해 부산 의원들은 똘똘 뭉치는 반면 인천은 여야 협력은커녕 같은 당 의원들조차도 호흡을 맞추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 것이었다.

인천은 6대 광역시 중 '외형적 성장'을 꾸준히 이어가는 유일한 도시다. 국회 타 지역 의원들에게 많은 견제를 받는다. '여의도 정치'에 휘둘리면서 응당 받아야 할 몫조차 얻지 못하는, 수도권 변방도시에 머물러 있다. 이제 도시의 성장을 뒷받침할 내실을 다지는 일에 인천 의원들이 나서야 한다. 인천고등법원 설치 법안 무산 사례가 보여준 것처럼 부당한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나려면 스스로 정치적 몸집을 키워나가는 수밖에 없다.

/김명래 인천본사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