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친'(수영 친구)도 수영이 좋은 이유다. 나에게도 수친이 생겼다. 이름도 모르지만 수영복 색깔로 그를 알아챈다. "내일 모레면 60살"이라는 말에 나이만 짐작해볼 뿐이다. 강습이 끝나면 샤워장으로 가면서 얼마나 수영이 늘었는지 서로 공유한다. 수영에 대한 열정만으로 맺어진 우정이다.
즐겁기만 했던 수영강습 시간이 불편해진 건 얼마 전부터다. 연이은 아침 일정에 일주일 만에 강습을 간 날이었다. 배영을 하려고 물에 떠 있는데 자세를 고쳐주던 강사가 "살이 많이 탔다. 강습을 빠지고 놀러 갔다 왔느냐"며 웃었다. 맨살이 드러나는 수영복 차림이어서였을까. 순간 불쾌함이 온몸으로 번졌다. 그 수업시간에만 "수영을 해도 살은 안 빠지는 것 같다", "결혼은 언제 하실 생각이냐" 등등 여러 발언들이 이어졌다.
순간 과거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2년 전 매일 아침 사건사고를 챙기러 경찰서로 향하는 게 수습기자의 일이었다. 안면을 튼 경찰들 몇명과 함께한 저녁 자리에서 아버지뻘인 그들은 나와 동기에게 "오빠라고 불러보라"며 농담을 했다. 더 심한 발언도 있었지만, 굳이 열거하고 싶지 않다. 당시 선배 기자가 공식적으로 해당 경찰관들의 상관에게 항의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이후에도 불쾌한 말을 듣는 일은 종종 생겼다. 이런 일에는 직업이 '기자'라는 것도 별 소용이 없는 듯했다.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들을 때마다 매번 심장이 쿵 내려앉아 저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리곤 죄책감이 밀려온다. 왜 그 자리에서 불쾌한 티를 내지 못했을까.
'성희롱'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애초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잘못은 발언자에게 있지, 듣는 사람에겐 없다. 더는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이 글을 쓴다.
/백효은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