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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준 사회부 기자
기자는 취재원이 느끼는 아픔과 고통에 어디까지 공감해야 할까. 사회부 기자로서 현장에 나가 말기암 판정을 받은 환자, 불볕더위에도 온갖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배달에 나서는 라이더, 자기의 삶을 치매 남편에게 전부 쏟아부은 할머니처럼 혹독한 현실을 사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고민하곤 한다.

이 고민 중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이성이었다. 객관적인 사실만을 다루는 공정한 언론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올라오는 눈물을 삼켰고, 나에게 주어진 취재와 기사 작성이라는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취재원이 토로하는 아픔을 듣고 공감하는 것은 후순위로 밀렸다. 울렁이는 마음을 이성으로 덮었고 기사에 쓰기 좋은 멘트를 받는 데에만 혈안이 됐다.

감정을 배제한 채 취재하고 작성한 기사를 읽을 때면 죄책감이 한편에 자리 잡는다. 내 일을 위해서 누군가의 아픔과 슬픔을 이용한 것은 아닌가란 생각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듣고 전달하고 싶다는 기자 준비생 시절의 다짐과 다른 모습에 찜찜한 기분이 들곤 한다.

기자란 목표를 가지고 취업을 준비하던 때 읽은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새뮤얼 프리드먼이 쓴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란 책을 상기해본다. 책은 저널리스트가 갖추어야 할 여러 자질을 설명하며 '인간으로서 따뜻한 가슴'을 유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저널리스트는 객관성과 공정함을 견지해야 하는 존재이지만 인간이 느끼는 연민과 동정 등을 부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아픔과 슬픔을 겪는 이들의 마음을 기자가 느끼지 못하고, 그 마음을 기사로 제대로 옮길 수 없다면 비인간적인 기자의 모습이며, 기자로서 실패한 것이라고 단언한다. 기자가 된 지 만으로 1년을 바라보는 지금,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취재에 나섰는지 돌아본다. 인간의 감성과 감정을 전달하는 것 또한 저널리즘의 역할이라고 프리드먼은 말한다. 바쁘다는 핑계와 냉정해야만 한다는 착각으로 실패한 기자가 되지 않길 다짐해본다.

/한규준 사회부 기자 kkyu@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