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추진·청문회·필리버스터 '도 넘은 국회'
국민 눈치 안보고 권력투쟁 국민에 대한 반칙
폭염 8월 한달간 정치권에서 아예 눈을 떼고
파리 올림픽 응원하며 희망의 사다리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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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종 서울취재본부장
꼰대스럽긴 하지만, 1997년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아닐까 싶다. 평생 바쳐 일군 사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가장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던 그 시절은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미래를 담았던 약속어음은 휴지조각이 되고,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고, 그나마 연명했다 하더라도 임금은 무차별 삭감되는 추운 겨울이었다. 그래서 국가적 '환란'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을 자조적으로 비판했던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인 2010년대다. 그 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경제적 불평등, 청년실업 등 사회적 양극화가 더욱 부각되었고, 많은 이들이 사회에 대한 불만과 절망을 느끼고 있다.

이런 국민의 고통을 품어 희망을 줘야 할 정치는 유행이 돼버린 탄핵추진에 각종 청문회, 필리버스터까지, 지난주 국회는 전쟁터였다. 여야가 싸우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제는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개문발차'한 22대 국회는 거대 야당의 독주로 한층 거칠어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를 겨냥한 거야(巨野)의 탄핵 구호는 일상화됐다. 175석의 압도적 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헌정사에 전례 없는 '기관장 직무대행' 탄핵을 추진하는 등 방송통신위원회 대상 탄핵소추만 벌써 세 번째 발의했다. 장관급(방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사흘째 강행한 것 역시 전례가 없는 일이다. 누구를 위한 청문회인지 도무지 상식을 넘는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

17개 상임위원회 배정에서부터 야당은 '다수'로 밀어붙였다. 법제사법위원회를 장악한 '정청래호'는 변칙 경로를 통해 '국민동의청원 탄핵청문회'를 열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만 외치고 있다. '불법'이라는 여당의 주장은 쪽수에 밀려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그 현장을 지켜보고 있으면 딱한 마음이 생길 정도다. "국회법 145조 2항에 의해 발언권을 중지하겠다", "퇴장시키겠다", "토 달지 말라"는 철없는 위원장의 언행을 보면 좀 추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동료 의원들에게 엄포를 놓거나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며 인격적 모욕까지 서슴지 않는 그 역시, 나중에 다 부메랑이 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러면서 장외에선 윤석열 정부가 각종 거부권 행사를 남발하고 있다며 '폭정'과 '폭주'를 멈추라고 비난하고 있다.

무엇이 우리 정치를 이리 깊은 수렁에 빠뜨리고 있는가.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정치에 반영하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얘기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전 대표를 확정적 범죄자라는 인식을 버리지 않고 있고, 이 전 대표와 민주당은 그럴수록 거기에 대한 심신의 저항도 더욱 강렬해져 작용과 반작용의 혼란에 빠져 있다. 그런 여야 싸움의 본질은 생존투쟁일 뿐이다.

작심하고 무한정쟁을 벌이는 저간에는 앞으로 2년여 간 선거가 없다는 점도 작용하는 듯하다. 국민 눈치 보지 않고 권력투쟁에 몰입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반칙이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국민들은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지금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정치혐오적 지표가 드러나고 있지만, 좀처럼 개선의 여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치 IMF 시대, '헬정치' 열차가 출발한 느낌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폭염이 시작되는 8월 한 달은 정치권에서 아예 눈을 떼버리자. 1997년 환란 위기 당시 박찬호 선수가 LA다저스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강속구를 던지는 것을 보고, 우리 국민들은 희망을 가졌다. 지난주 뉴스에 나온 2분기 삼성·현대차·SK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의 역대급 영업이익 실적, 특히 삼성전자가 '2024 파리올림픽' 참가선수들에게 1만7천대의 핸드폰을 보급했다는 소식은 국민들에게 큰 자부심을 안겨 주었고,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정치권의 폭주열차를 무시하고, 파리 올림픽의 '금빛사냥'을 응원하며 희망의 사다리를 만들어 보자. 그게 난장같은 정치를 배격하고, 국민들이 함께 긍정적인 에너지를 공유할 수 있는 길이다.

/정의종 서울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