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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현 사회부 기자
3월26일 성남의 한 도로에 타조 '타돌이'가 나타났다. 10차선 도로를 내달리고 차들과 나란히 터널을 통과하는 장면이 사진과 영상에 담겨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도심 속 난데없는 타조의 등장에 사람들은 신기한 반응을 실시간으로 주고받으며 무사귀환을 응원했다. 다행히 타돌이는 1시간가량 질주를 마치고 생포돼 자신이 탈출했던 체험형 동물원으로 돌아갔다.

6월4일 부천의 한 실내동물원을 지난 1월에 이어 6개월 만에 다시 찾았다. 이 동물원 '정글존'에 사는 반달가슴곰을 비롯한 야생동물들의 생활환경은 나아졌을까.

하지만 작은 기대는 금방 무너졌다. 반달가슴곰은 무기력한 채 같은 자리에서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정형행동'을 반복했다. 여전히 이들의 비좁은 정글을 채운 건 콘크리트 바닥과 인공 조형물뿐이었다.

경인일보가 기획취재팀을 꾸려 찾은 독일, 네덜란드의 동물원은 좁은 철창 우리로 규격화된 국내 동물원의 모습과 달랐다. 무엇보다 동물복지, 종 보전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즉각적으로 반영하는 노력이 눈에 띄었다.

독일 뮌헨 헬라브룬 동물원은 10년 새 보유 동물 종 숫자를 750여 종에서 520종가량으로 줄였고, 네덜란드 뷔르거 동물원은 동물이 최대한 야생 환경에 맞춰 자유롭게 거닐 수 있도록 '열대 우림존'의 비중을 키우고 있었다.

이들은 기존 동물원의 전시 기능을 최소화해 받아들이면서도, 오늘날 동물원이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역할을 부단히 찾았다. 동물원을 향한 시민들의 애정도 남달랐다. 헬라브룬 동물원에서 만난 한 방문객은 개선점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한참 뜸을 들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느냐"고 외려 자부심을 드러냈다. 앞서 국내 동물원에서 만난 시민들이 전시된 동물을 보고 양가감정을 갖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낡고 협소한 우리에서 평생을 살거나, 탈출을 감행하고 끝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국내 동물원의 이야기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빤하지만 이는 법과 제도가 제 역할을 못한 탓이다. 허가된 동물원만 등록 가능하도록 '동물원수족관법'이 개정됐지만 기존 운영 동물원은 유예 대상이라 관리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동물원 현장 감독을 위해 도입된 전문검사관제 역시 사실상 발을 떼지 못한 초라한 단계다. 폐업 동물원에서 동물이 졸지에 갈 곳을 잃거나, 굶어죽을 위기에 처해도 지자체는 사태를 관망할 뿐이다. 동물이 사유재산이라 손 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국내외 동물원, 동물복지 연구자 중 상당수는 "동물원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다소 급진적일 수 있는 이들의 주장이 이제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동물을 가둬 전시하는 전근대적 동물원 원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인간에게 종속된 존재로 동물이 고통받는 역사는 필연이다.

3월의 타조처럼 여전히 느슨한 법·제도 그물망 아래서 방치된 동물은 동물원을 탈출해 도심을 활보하다 잡혀 철창 속 케이지로 돌아갈 것이다. 평생을 비좁은 우리에 갇혀 생활하다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동물들은 또 얼마나 될까.

이 같은 비극을 멈추려면 국회가 굼뜬 '동물의 비물건화'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 개정 동물원수족관법의 빈틈을 촘촘히 메우는 것도 시급한 문제다.

동물의 삶을 지키지 못하는 동물원이라면 존재 이유가 없다. 비극의 고리를 끊기 위한 정치권의 책임 있는 움직임이 필요한 때다.

/조수현 사회부 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