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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사회부 기자
"지구가 고장 났다."

수많은 취재의 결론이 하나로 귀결되고 있다. 탄천 인근 아파트에 못 보던 벌레들이 갑자기 폭증한 것도, 광교산 아래 집에서 십여 년 넘게 살아온 주민이 산사태의 공포에 떨어야 하는 것도, 갑자기 불어난 오산천에 하수도가 역류해 반지하 집이 침수된 것도 전문가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기후 변화'라는 공통된 답을 내놓는다.

그러고 보면 올해 여름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알던 여름이 아니다. 이전에도 이 정도 폭염과 호우는 있었지만, 두 개를 하루에 동시에 겪어 본 적은 없었다. 어릴 적 태국에 여행을 가서 신기하게 보았던 스콜이 이제 우리 동네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런 변화무쌍한 날씨는 단순히 우산을 챙기지 못해 갑자기 비를 맞는 찝찝함으로 그치질 않는다.

기후는 사회다. 질병관리청 웹 사이트에는 매일 온열 질환자 수가 갱신된다. 지난달 많아야 하루에 두 자릿수를 기록하던 온열 질환자 수는 8월이 되자 어느덧 세 자릿수로 늘었다. 경기도는 아직 여름이 한참 남았음에도 벌써 누적 환자 수가 300명을 넘어가고 있다. 불과 3년 전인 2021년의 전체 누적 환자 수 기록은 깨진 지 오래다.

기후는 경제다. 도내 곳곳에는 폐사한 가축과 농작물 피해 소식도 계속 들려온다. 도는 지난해 폭염 피해로 가축들이 폐사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393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그럼에도 지난 한 해 동안 가축 재해 보험 지급액은 366억5천500여만원에 달했다. 최근 5개년 중 최고 금액이다. 농작물 재해 보험 지급액 역시 지난해 272억6천500여만원으로 3년새 꾸준히 상승해 왔다.

기후는 정치다. 지난 6일 정부는 처음으로 폭염 현장 상황관리관을 전국에 파견해 대처 상황을 긴급 점검했다. 지난 4월엔 총선을 앞두고 시민사회에서 거대 양당 후보들의 기후 관련 공약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기후는 현실이다. 이제는 그동안 문제없이 기능하던 시설물과 매뉴얼이라도 재점검하고 보강해야 한다. 홍수 피해를 막는 제방의 높이와 강도도, 폭염에 대응하는 야외 작업 기준도 다시 살펴볼 때다. 전에 알고 있던 안전 상식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이 없다고 하지만 기후 위기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도 여전히 놓을 수 없는 문제다. 특정 곤충의 대발생은 방역 체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종 다양성이 회복될 때 각 생물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개체 수를 조율해 간다. 산사태 역시 기후 변화로 인한 토질 변화를 막는 것이 근원적인 해결책이다.

풍자로 유명한 미국의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 아버지 호머 심슨은 더위에 시달리는 아들 바트 심슨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번 여름이 너의 남은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거란다."

기후 재난은 이미 시작됐다. 어느 순간 위험하다는 경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미 늦었으니 최대한 진행을 늦추고 그 사이 피해를 최소화할 인프라를 구축하자는 말로 바뀌고 있다. 현상을 따라가는 기자 입장에서, 또 현실을 살아가야 할 미래 세대 입장에서 내년엔 어떤 겪어 보지 못한 사건 사고가 발생할지 가늠조차 불가능하다는 불안이 다가온다.

그러나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문제라면 지금 당장 한 그루의 사과나무부터 심어야겠다.

/김지원 사회부 기자 zon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