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항일운동 때 임무가 뭐였어요?" 질문에…
101세 광복군은 모스부호를 치던 16세로 돌아갔다
국권 침탈 후에 독립운동 등 공로
광복 후 상하이 교민 한국행 도와
일본서 지내다 100세 나이에 귀국
거동 힘들지만… "한국 와서 좋아"
"광복군에서 내 임무는 모스부호…" 13일 수원 보훈원에서 만난 오성규(101) 애국지사는 본인의 항일운동에 대해 "다 잊어서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한국광복군에서 본인이 맡았던 임무는 또렷하게 알고 있었다.
오 애국지사는 현재 국내에 생존해 있는 5명의 항일 애국지사 중 최고령이다.
그는 지난해 8월 일본에서 한국으로 영구 귀국해 수원 보훈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오 애국지사가 생활하는 방에는 지난 1990년 받은 건국훈장과 국가유공자증, 가족사진이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100세가 넘은 나이로 왼쪽 귀는 들리지 않고 눈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대화를 하려면 귀에 딱 붙어 크게 말해야 할 정도다. 그럼에도 "한국광복군에서 본인의 임무가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에 손으로 모스부호를 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애국지사는 일제 국권 침탈 후부터 1945년 8월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 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한 공로로 건국훈장·건국포장·대통령표창을 받은 독립운동가를 말한다.
오 애국지사는 1924년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태어나 지역의 중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 만주로 건너갔다. 중국에서 비밀조직을 결성해 항일 활동을 펼치다 일제에 노출되자 한국광복군에 입대했다. 당시 나이는 16세였다. 광복 후 중국 상하이에 남은 교민들을 한국으로 무사히 옮기는 임무도 수행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해방 후 이념 대립 등 국내 정세 혼란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뒤, 지난해 여생을 보내기 위해 100세의 나이에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는 "일본에서 생활하다가 한국으로 와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애국지사들은 시대가 흘러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예우하고 싶어도 예우할 지사들이 사라지고 있다.
경기도에서도 도내 생존 항일 애국지사를 예우하기 위해 지난 2018년 10명의 애국지사에게 지급했던 경기광복유공연금은 현재 대부분 서거해 2명에게만 지급하고 있다.
오 애국지사도 흡인성 폐렴 등 지병과 고령으로 인해 도움 없이는 거동도 힘들다.
도내 또 다른 생존 애국지사인 오희옥(98) 애국지사는 지병으로 지난 2018년 3월 서울 보훈병원에 입원한 뒤로 퇴원하지 못하고 있다.
오희옥 애국지사의 아들인 김흥태(60)씨는 "기력이 많이 떨어져 대화하기도 힘들다"며 "지난해 11월 팔이 골절된 뒤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다. 형제들이 이틀에 한 번꼴로 병원을 찾으며 건강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선기자 zero@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