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파주시에서 CJ대한통운 택배기사로 일하는 오모(49)씨는 전날 저녁 느즈막이 배송업무를 마치고 전북의 처가댁으로 향했다. 14일인 이날이 ‘택배 없는 날’인 덕분에 공휴일이 아님에도 15일까지 연달아 쉴 겨를이 생겨서다. 오씨는 “택배일을 시작하고 주 6일씩 근무하며 빨간날을 제외하고 이틀을 연속해서 쉰다는 일을 상상하기 어려웠다”며 “이제 멀리 있는 가족들을 찾아뵐 수 있는 시간이 생겨 마음에도 여유가 조금은 찼다”고 말했다.
성남시 분당구에서 우체국 택배기사로 일하는 송모(55)씨도 택배 없는 날을 맞아 모처럼 가족과 달콤한 휴식을 보내고 있다. 휴가 개념조차 떠올리지 못한 채 무더위를 나던 과거와 달리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생겼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힘들어도 쉬게 되면 물량을 다른 직원이 감당하게 되기 때문에 쉴 생각이 선뜻 나지 않았다”며 “공식 연휴가 생기니 마음 놓고 휴식할 수 있어 좋다. 택배기사들이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 늘었으면 한다”고 했다.
올해로 네 번째 택배 없는 날을 맞은 택배기사들이 휴일 없이 반복하던 택배 업무를 뒤로 하고 휴일을 보내고 있다.
택배 없는 날은 지난 2020년 처음 생겼다. 과중한 배송업무에 따라 택배기사가 과로사하는 등 사회문제가 대두되자 택배 노동자들은 휴식권 보장을 요구했고, 정부와 CJ대한통운·한진·롯데글로벌로지스·우체국 등 택배업체는 공동선언문 형식으로 8월 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정했다. 업체별 지점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올해는 광복절인 15일까지 이틀간 배송업무를 멈춘다.
다만 사회적 합의 형식이라 법적 구속력이 없고 쿠팡과 컬리, 편의점 ‘반값 택배’ 등 자체 배송망을 운영하는 업체는 쉬지 않고 운영해 모든 택배 기사를 아우르지 못하는 반쪽짜리 택배 없는 날이란 지적도 있다. GS25와 CU 편의점의 자체 배송망을 이용하는 반값 택배는 휴무 없이 수거와 배송이 이뤄진다. 이러다보니 지난해 택배 없는 날에는 편의점 택배로 수요가 몰리기도 했다. “택배 업체들이 선의로 참여하고 있고, 몇몇 업체는 불참을 고수하니 물량 싸움으로 자본을 앞세우다 보면 결국 택배 없는 날이 사라지게 될 것”(도내 한 택배기사)이라는 우려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사회적 합의 당시 쿠팡은 택배 없는 날에 동참하지 않은 이유로 설립 초기 택배 노동자들을 모두 ‘직접 고용’했기 때문에 유급연차 등이 보장된 이들이 언제라도 자율적으로 쉴 수 있다는 것을 들었다. 이후 배송 전문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를 만들어 다른 택배업체와 다를 바 없는 체계라는 비판이 커지는 것에 대해 쿠팡은 지난 4일 보도자료를 통해 “쿠팡 CLS는 기존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택배기사가 365일 언제든 휴가를 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택배 기사의 업무를 남은 직원들이 떠안는 문제도 숙제로 남는다. 우체국 집배원들은 택배 위탁기사들이 택배 없는 날에 쉬게 돼 ‘토요택배’와 과도한 택배 물량을 배당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우체국 앞에서 우정사업본부를 향해 과로방지 대책을 촉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