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소비자의 권한을 보장하기 위해 기업과 공공기관 등의 민원처리 의무가 강화됐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으로 '악성 민원'이 늘면서 민원 담당자들이 오히려 피해자가 되고 있다. 악성 민원인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거나, 극단적 선택까지 하는 일도 발생했다. 악성 민원의 종류와 범주도 늘고 있다. 지난 2021년 스트레스로 소상공인이 숨진 이른바 '새우튀김 갑질 사건' 등 블랙컨슈머 등의 사례가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공공 영역은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공무원이나 교사를 상대로 '민원'을 핑계 삼아 집요하게 괴롭히는 일이 허다하다. 악성민원으로 인한 행정력 낭비도 상당하다. 1997년 제정된 '민원 사무처리에 관한 법률'은 철저하게 민원인을 대변하는 법이다. 민원이 발생할 경우 정부나 기관, 지자체가 민원 처리 매뉴얼을 통해 이를 해결할 의무를 명시했다. 하지만 악성 민원인이 속출하면서 법 제정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속출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16년 법이 전면 개정돼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로 정비되면서 민원인의 의무 조항이 신설됐다. '민원인은 민원을 처리하는 담당자의 적법한 민원 처리를 위한 요청에 협조해야 하고 행정기관에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다른 민원인에 대한 민원 처리를 지연시키는 등 공무를 방해하는 행위를 하여선 안 된다'는 내용이다. 최근에도 민원에 따른 교권 침해 문제가 발생해 교권보호법 제정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현장에선 법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후약방문식 대응이 아니라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대국민 인식개선과 피해자 보호대책이 절실하다. 실제 최근 한 교원단체의 설문 결과를 보면, 악성 민원 등으로 교권 침해가 발생할 경우 응답자의 63.6%가 혼자 감당하고 있다고 답했다. 공직사회에서는 여전히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기 일쑤다. 악성 민원을 규정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조치를 만드는 일이 우선이지만, 피해자 발생 시 관련 업무에서 즉시 배제하고, 심리적 지원을 통해 이를 극복하게 하는 방안도 만들어야 한다.

국민 캠페인도 필요해 보인다. 민원 담당자도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안내음성으로는 악성 민원을 거르기 힘들다. 보다 강력한 공공캠페인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