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을 오가는 전국의 연안여객선들이 전기차 화재에 매우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양수산부가 마련한 '전기차 화재 가이드라인'은 선사에 권고하는 수준이고 이조차도 근본적인 처방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최근 해양수산부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차량을 선적하는 전국 연안여객선 114척 중 37척(26%)만이 질식소화포 등 전기차 화재 진압용 장비를 갖춘 것으로 나타났다. 최북단 섬인 백령도를 비롯해 수많은 섬이 있는 인천에서 여객선을 운항하는 선박 업계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인천 연안여객선 12개 선박 중 대부~덕적, 대부~이작, 강화 선수~주문도, 삼목~장봉 등 4개 항로 6개 선박에는 전기차 화재 진압용 장비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차량을 빼곡히 싣는 선박 구조상 자칫 화재가 발생하면 삽시간에 화염이 번져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소방당국의 신속한 대응도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전기차는 일반 차량보다 불을 끄기가 더 어렵다. 그나마 일부 선사들이 구비했다는 관련 장비는 대부분 질식소화포인데, 전기차 화재 진압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온다. 질식소화포는 열을 차단하는 기능이 없어 화재 확산을 막는 데 효과가 작다는 것이다. 선사들은 이조차도 구비할 법적 의무가 없는 게 현실이다.
해양수산부가 내놓은 '전기차 화재 가이드라인'에는 '충전율 50% 이하 차량만 선적', '사고이력 전기차량의 선적 제한'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전기차 충전율과 화재 발생의 인과관계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섬 지역을 지역구로 둔 인천시의회 신영희(국힘·옹진) 의원은 최근 본회의에서 "여객선처럼 폐쇄된 공간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매우 크다"고 우려했다. 그는 "해양수산부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이는 선사에 권고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하며 해양수산부·해양경찰청·인천시 등이 참여하는 통합 안전 관리 시스템 구축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정부는 전기차 화재 진압용 장비들의 효과를 철저히 검증해 선별하고 이를 선사들이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선박 내 화재 감지 설비 보강은 물론 선원 등을 대상으로 하는 화재 예방과 대응 교육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