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조례로 설정 소극적 태도
8개 시군 뿐… "예산 투입 어려워"
건널목 다 건너기전 빨간불 일쑤
전통시장·공원 등 사고 위험 높아


노인보후구역 주차
17일 수원시 권선구의 한 노인보호구역에 불법 주정차 차량들이 늘어서 있어 노인의 보행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2024.10.17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전통시장이나 노인시설 주변의 일부 횡단보도에서 이미 빨간불로 바뀌었는데도 어르신들이 여전히 길을 건너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횡단보도 신호등 보행 시간을 늘리는 등의 조치가 가능한 '노인보호구역' 지정 확대 권한이 관할 기초지자체에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극적인 행정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17일 법제처에 따르면 도로교통법상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노인 관련 시설 또는 해당 장소의 주변 도로(최대 500m)엔 차량 주정차가 금지되고, 차량통행 속도를 30~50㎞로 제한한다. 또 보행자 속도 기준을 일반 횡단보도 기준인 초당 1m에서 0.7m로 낮춰 보행 시간을 그만큼 늘리게 된다.

특히 지난 2022년 4월 법률 개정 이전엔 관련 시설의 장이 지자체에 신청해야만 보호구역을 지정할 수 있었지만, 이후엔 지자체가 자발적으로 조례를 통해 지정할 수 있게 됐다. 요양원이나 경로당 같은 시설과 마찬가지로 노인 통행이 잦은 전통시장이나 공원 주변도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될 방법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여전히 관련 시설에서 보호구역 지정을 신청하기만 기다리고 있다. 법이 바뀐 뒤 관련 조례를 만들거나 바꾼 시·군은 도내 8곳뿐이고, 조례를 마련한 지자체도 여전히 '신청주의'에만 매몰돼 있는 실정이다.

 

노인보호구역 주차
17일 오후 수원시 권선구의 한 노인보호구역에 불법 주정차 차량들이 늘어서 있다. 2024.10.17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도내 한 지자체 관계자는 "보호구역 신청이 들어오면 경기도의 예산 지원이 가능한데, 자체적으로는 시군 예산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현장에서 노인들의 교통사고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이날 찾아간 부천자유시장 인근의 부천역남부삼거리 횡단보도에선 적색 신호등으로 바뀌고 난 이후 허둥지둥 차도를 벗어난 어르신들이 전봇대를 붙잡고 숨을 돌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원 세류동의 한 경로당은 매일 30명 넘는 어르신이 사용하는 노인시설인데도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지 않다. 경로당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경로당 입구 경사로 앞에 주차된 차량이 많아서 전동 휠체어 통행이 너무 어렵다"고 호소했다.

이 때문에 지자체들이 보호구역 지정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신체적 한계가 있는 노인이 보호구역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기는 어렵다"며 "지자체가 나서서 보호구역을 확대하고 노인 왕래가 잦은 시설을 대상으로 보호구역 신청을 독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준석기자·마주영수습기자 joons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