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일 만에 협상 테이블 다시 앉은 노사
반도체 부문 부진에 분위기 전과 달라져
올 3분기 실적에 전영현 부회장 사과도
내우외환 상황… 최상 합의안 마련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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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호 경제부장
삼성전자 사측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하 전삼노)이 7월31일 이후 78일 만인 지난 17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21일 임금교섭을 시작으로 2주에 한 번씩 월요일에 임금 협상, 수요일에 단체협약 협상을 하기로 하면서 본격적인 노사 간 임단협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지난 7월 초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첫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던 전삼노는 파업 돌입 4주 만에 교섭권 종료에 맞춰 현업에 복귀했다. 삼성전자 내외에서 명분도 실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파업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대표교섭권 선정과정을 거치면서 삼성전자 노사가 다시 얼굴을 마주보게 됐지만, 반도체 사업 전반에 드리운 악재로 인해 삼성전자의 경영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분명히 80여 일 전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실제 지난 8일 발표한 삼성전자의 3분기 연결기준 잠정 실적은 매출 79조원, 영업이익 9조1천억원으로 집계됐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각각 17.21%, 274.49% 올랐고 특히, 매출은 분기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2022년 1분기(77조7천800억원) 기록을 뛰어넘었다.

그러나 3분기 매출이 직전 분기 대비 6.66% 증가한 반면, 영업이익은 12.84% 감소했다. 시장에선 핵심 사업인 디바이스설루션(DS, 반도체) 사업부의 실적 부진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 설루션(DS) 부문은 지난해 연간 15조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내면서 성과급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초과이익성과급(OPI) 제도 도입 뒤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기에 범용 D램마저 중국의 저가 공세로 위협을 받고 있는 데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역시 엔비디아 공급이 지연되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 더 큰 문제이다. 실제 파운드리 사업 역시 3분기 상당한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면서 검은 먹구름만 잔뜩 드리우고 있는 실정이다.

올 3분기 잠정 실적이 발표된 날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이끌고 있는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이 공식 입장문을 내고 사과했다. 2023년 적자를 기록했을 때에도 하지 않았던 사과이다. 삼성전자 내부에서 느끼는 위기감이 얼마만큼 큰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 부문장은 사과문을 통해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쳤다"며 "먼저 송구하다는 말씀을 올린다"고 사과했다. 특히 그는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을 복원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전 부문장은 "기술과 품질은 우리의 생명이고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자존심"이라며 "단기적인 해결책보다는 근원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세상에 없는 기술과 품질로 재도약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삼노는 ▲임금 인상 ▲노조 창립기념일 1일 지정 ▲성과급 제도 개선 ▲사기 진작 격려금 지급 등을 이번 교섭 안건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또한 지난 5월 기흥사업장에서 노동자 2명이 방사선에 피폭되는 사고에 대한 책임 문제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2023∼2024년 임단협이 타결된다고 해도 곧바로 2025년 임단협 협상이 예정돼 있기 때문에 노사교섭이 마무리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교섭이 시작 단계인 만큼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지만 임단협이 길어질 경우, 지난 7월 전면파업에 이어 2차 전면파업에 돌입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조심스럽게 나온다.

삼성전자의 현재 상황에 대해 사자성어 '내우외환'(內憂外患)이 딱 들어맞는다. 삼성전자 사측도 사측 나름대로 입장이 있고 전삼노도 전삼노 나름의 입장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삼성전자의 위기는 단순히 삼성전자 경영진만의 위기가 아닌 삼성전자 노조와 노동자 그리고 삼성전자와 거래하고 있는 협력사들까지 위기라는 점을 인식하고 최상의 합의안이 마련되기를 기원해 본다.

/문성호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