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정부청사 정부민원안내콜센터에서 일하는 상담사 A씨는 지난 2월 ‘차세대 지방세입정보망 시스템’의 도입 이래 8개월간 지금까지 7명의 동료가 현장을 떠났다고 한다. 새로 들어선 시스템이 세액 조회 오류 등 숱한 문제를 낳으면서 관련 항의가 정부콜센터로 빗발친 탓이 결정적이었다.
A씨는 “우울증 진단을 받거나 성대결절을 겪고 끝내 동료 몇몇이 퇴사를 결심하고 떠났다”면서 “‘닭장’처럼 한데 모여 근무하는 환경도 과거와 바뀌지 않은 것을 보면 상담사들을 지키는 법 개정 이후 변한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 6년을 맞았지만, 전화상담사 등 현장에서 일하는 고객응대 노동자들은 여전히 민원인들의 폭언과 ‘갑질’에 노출돼 있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실질적인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사업장 관리·감독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가 지난달 산안법의 적용을 받는 177개 사업장의 노동조합 안전보건 관계자를 상대(각 사업장 1명씩)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 법 시행 이후 ‘고객의 악성행위가 줄어들었느냐’는 물음에 사업장의 68.4%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또 ‘사업주가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해 적극적 의지를 보이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71.2%가 부정적인 의견을 남길 정도로 법 시행 이후에도 현장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당 정혜경 국회의원은 22일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의 취지가 무색해지지 않도록 정부가 현장 감독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상담전화에서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안내멘트가 흘러나오지만 쉽게 전화를 끊을 수 없다”며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 취지를 제대로 살리려면 고용노동부가 적극적인 사업장 관리·감독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 의원은 이날 열린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회사 측의 의지”라면서 “사업장 실태가 어떤지 고용노동부가 책임 있게 조사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관련 문제에 대한 질의를 이어갔다. 이에 대해 김종윤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대규모 실태조사는 예산 등을 고려해야 하지만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