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사과는 소통을 위한 정치적 언어
책임 인정·신뢰 회복 등 그 이상의 의미도
尹 정권 '갈등 출발점' 김건희 여사 의혹들
원만한 국정 2기 위해 분명한 입장 정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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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종 서울취재본부장
기자가 대통령의 사과를 접한 것은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처음인 듯하다. 망자에 대한 얘기이긴 하지만 아들 현철씨의 권력개입에 화들짝 놀랐던 시절이다. 아버지 YS는 '칼국수'로 국정쇄신에 전념할 때 아들은 뒤에서 황태자 놀이를 하며 권력을 쥐락펴락했다. 국민들의 공분으로 결국 현철씨는 기업 로비에 연루돼 금품수수 및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구속됐고, YS는 머리를 숙여야 했다.

그 이후 DJ(김대중 전 대통령)도 두 아들이 아버지를 등에 업고 이권에 개입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차남 홍업씨는 청탁 건으로, 3남 홍걸씨는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과정에 개입해 각각 수십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DJ는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형 노건평의 부동산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사과를 했고, MB(이명박 전 대통령)는 가족 문제는 아니었지만, 돌이켜보면 아무렇지 않았던 미국산 소고기 수입 협상이 잘못됐다는 성난 촛불(민심)에 밀려 마음에 없는(?) 사과를 했어야 했다. 지는 게 이기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사상 초유의 탄핵을 맞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본명 최서원)의 국정농단이 터지자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 자괴감까지 든다"고 자책했고, 문고리 권력의 미숙한 실체가 하나둘 드러나면서 들끓는 민심을 당하지 못한 채 임기도 못 채우고 '옥새'를 내려놓아야 했다.

"이게 나라냐"고 시작한 문재인 전 대통령도 차이가 없었다. 아들, 딸, 아내 등 숱한 가족사의 부정 의혹으로 사과를 요구받아야 했고, 적폐청산의 메아리는 여러 사태를 겪으며 부메랑이 됐다. 자연인 문 전 대통령은 가족 문제로 '전직'의 신분으로 사과를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맥락에서 대통령의 사과는 국민과의 소통이고 대화를 위한 정치적 언어일 수 있다. 종종 책임을 인정하고, 신뢰를 회복하며,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단순한 사과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임기 반환점을 앞둔 윤석열 정권의 모든 갈등의 출발점은 김건희 여사다. 이번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요구한 김 여사의 대외활동 중단, 김 여사 관련 대통령실 인적 쇄신, 의혹 규명의 필요한 절차 등에 대해 대통령은 분명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아무리 야당이 국정에 발목을 잡는다 하더라도, 세상에 떠도는 소문이라 치더라도 국민이 믿고 오해하면 그게 진실이 되는 게 정치권의 속성이다. 지금처럼 여야 진영이 갈라져 필사적인 대결 구도에서는 더 그렇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전철은 이를 잘 설명해준다. 가족이 없었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세상 소문은 차마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거친 언어들로 구성돼 있었다. '세월호 7시간의 밀회설', '굿판' 등 천박한 표현이나 저속한 언어들로 이미지에 영향을 미쳤고,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진실에 가까운 게 없었지만 그는 탄핵됐고, 지금도 초라한 대통령상으로 남아 있다.

당시, 수사특검이었던 윤 대통령은 지금 현직 대통령으로서 어떤 생각을 할까. 최순실과 '경제공동체'로 엮었던 법 기술은, 이제 김 여사의 의혹을 놓고 '부부공동체'로 진화돼 있는 게 법감정이고 국민정서이다. 물이 끓는 비등점에 불을 끄지 않으면 냄비 뚜껑은 달아나고, 적기에 조절하지 않고 방치하면 '김치찌개'는 끓어 넘쳐 주변을 범벅으로 만들 것이다.

엊그제 국정감사에서 명태균씨가 김 여사와 '영적 교감을 하는 사이'라는 강혜경씨의 증언에 이어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향해 '장님무사'와 '앉은뱅이 주술사'로 정권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단어들로 가득 차 있다. 경남의 명태균이 경기도에서 나오지 말라는 법 없다. 선거를 처음 치러본 대통령 당선자의 현실과 한계는 분명히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윤 대통령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정치적 언어로 싸울 게 아니라 국민 앞에서 국민들이 공감할 언어로 실상을 얘기하고 잘못된 게 있으면 사과하고, 억울한 게 있으면 해명하고 털고 넘겨야 원만한 국정 2기를 맞을 수 있다. '진저리' 치는 국민들의 원성에 더 귀 기울여 주길 바란다.

/정의종 서울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