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4일 국회 시정연설에 결국 불참했다. 한덕수 총리가 본회의장 단상에 올라 28분간 대독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이후 11년간 이어진 대통령의 시정연설 관행이 깨졌다. 시정연설은 국회의 새해 예산안 심의에 앞서 정부 예산안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국회의 협조를 구하는 자리이다. 명태균씨와의 통화 녹음이 공개돼 야권에서 '정권 퇴진' 공세를 벌이는 상황이다. 대통령은 시정연설 포기로 상황을 모면한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시정연설을 앞두고 "윤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 직접 나와야 한다"는 의견을 대통령실에 전달했다고 한다. 시정연설 불참이 정부와 여당에 대한 국민 여론을 더 악화시킬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일 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시정연설은 삼권분립의 민주공화국에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인데, 이를 저버린 것에 대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명태균 게이트'로 대통령실과 여당은 하루하루가 폭풍전야다. 한 대표는 4일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대국민 사과와 대통령실 참모진 전면 개편, 쇄신용 개각을 촉구했다. 이와 함께 김건희 여사의 즉각적인 대외 활동 중단과 특별감찰관 임명을 요구했다. 지난 주말 장외 집회에 돌입한 민주당은 녹취 추가 폭로 카드를 흔들고 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여당의 공식 입장, 대통령의 직접 입장 표명이 어떤지, 김 여사가 입장을 밝힌 건 어떤지 등을 살펴보면서 정무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김건희 특검법' 수용을 압박했다.
윤 대통령은 총리 대독을 통해 "국제적인 고금리와 고물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지속됐고, 주요 국가들의 경기 둔화는 우리의 수출 부진으로 이어졌다"며 "정부 출범 이후 지난 2년 반,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을 정도로 나라 안팎의 어려움이 컸다"고 소회를 밝혔다. 직접 밝혔어야 할 국정 소회다. 대독으로 대통령의 진심과 진의가 사라졌다. 대통령의 리더십을 스스로 손상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오는 10일 임기 반환점을 돈다. 국민과의 대면을 불편해하는 태도로 남은 임기를 수행할 국정 동력을 유지할 수 없다. 대통령실은 이달 중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예고했다. 이 담화에서 결정적인 국면 전환 방안을 담지 못하면, 시정연설에서 강조한 정권의 '4대(연금·노동·교육·의료) 개혁'도 물건너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