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방문간호 사업을 취재하다 김씨를 처음 만났다. 의사소통이 어려워 그의 노모와 몇마디 이야기를 나눴다. 불편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겠지만, 역시 먼저 꺼낸 말은 역시 돈 문제였다.
주기적으로 서울 병원에 가는데, 사설 구급차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다. 김씨가 유일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은 사설 구급차다. 장애인이지만 침대를 통째로 옮길 수 없어 장애인 콜택시는 타지 못한다. 매달 20만~30만원을 들여 병원을 오갔다고 한다.
이날 취재는 그의 '이동권' 문제와 관련돼 있지 않았다. 노모의 푸념을 한참 듣다 취재를 마무리했다. 이들과 인연은 오늘까지겠거니 하고 장소를 빠져나왔다.
그해 가을, 누워서 생활하는 와상 장애인 이동권 실태를 취재하게 됐다. 다른 지역에서는 와상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사설 구급차 비용을 지원하고 있단다. 인천에는 이런 정책이 하나도 없었다. 가장 먼저 떠오는 게 김씨였다. 인연이 이어졌다. 그때 들었던 노모의 푸념은 바로 기삿거리가 됐다.
올해 5월에는 노모로부터 전화를 받게 됐다. 인연은 또 이어졌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사설 구급차 비용의 일부를 지원받았는데, 올해부터 지원이 끊겼다는 소식이었다. 또 기사를 썼다. 바뀌는 건 없었다. 큰 도움을 주지 못했는데도 노모는 내게 "고맙다"고 했다.
이 문제에서 손을 놓지 못했다. 유일한 취재원이었던 김씨와 노모에게 가끔 안부를 물었다. 딱 이번 여름까지였다. '우리 아들이 얼마 전 소천했습니다. 기자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후 우리는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얼마 전 인천시 인권보호관회의가 와상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시에 권고했다. 김씨가 있었다면 가장 먼저 들려줬을 소식이다.
/변민철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