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 복무 시절 부대 홈페이지에 민원이 올라왔다. 내용은 겨울철 길고양이가 부대 내에 너무 많아 쓰레기봉투를 찢어놓는 일이 빈번하니 잡아서 비행단 밖으로 쫓아내자는 것이었다. 아침마다 근무지에 출근하면 전날 정리해놓은 쓰레기봉투가 찢겨 있어 다시 새 봉투에 옮겨 담은 기억이 더러 있었기에 나는 그 민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해당 민원엔 이례적으로 지휘관급 장교가 답변을 달았다. 그 내용은 전역한 지 수년이 넘어도 아직 기억에 남는다. 장문의 답변에는 병사와 부사관, 장교 모두 존엄한 생명인 것처럼 고양이도 동일한 존엄이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자신 또한 고양이로 인해 많은 불편을 겪어 민원인에게 공감한다며, 그럼에도 옆에 있는 전우가 마음에 들지 않고 짜증을 유발해도 이를 표출하지 않고 그 입장을 이해해보려는 것처럼 추운 겨울 고양이의 삶을 이해해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글 말미에 그 지휘관은 유발 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 중 한 대목을 덧붙였다. ‘인간이 저지른 죄악 중 한 가지는 야생동물을 가축화시킨 것이다’. 인간은 돼지와 소, 닭 그리고 개와 고양이를 자연에서 우리 곁으로 데려왔고, 이 때문에 발생하는 유기견과 유기묘로 인한 문제는 인간 선택의 책임이다.
지난달 수원 광교산에 개 10마리가 유기됐고, 이 중 법정 제2종 가축감염병인 브루셀라에 감염된 개체가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수원시 반려동물센터는 즉각 보유 개체를 대상으로 검사를 진행했고, 양성판정이 나온 푸들 4마리를 살처분 조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원과 의왕 일대에 유기·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슴들이 인간 거주지까지 나타났다. 의왕에 있던 사슴은 탈출한 사슴농장의 주인에게 돌려줬지만 수원에 있는 사슴은 주인을 찾을 수 없어 이후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마땅한 보호처가 나오지 않을 시 안락사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날이 추워지고 있다. 이맘때쯤 길고양이와 눈을 마주치면 그때 그 지휘관의 글이 떠오른다. 거리에 나온 고양이와 개 그리고 사슴의 생명은 인간만큼 존엄해야 한다.
/김지원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