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가파르다. 내년 상반기엔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다. 여성의 평균 수명은 90세를 돌파했고, 남성도 86세를 넘어섰다. 은퇴 후의 삶이 길어진 ‘호모 헌드레드 시대’를 맞아 상속 연령도 늦춰졌다. 80, 90대 부모가 사망하면서 시니어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노노(老老) 상속’이 급증한 배경이다. 80세 이상 피상속인에게 상속받아 상속세를 납부한 비중은 2010년 33%(1천344건)에서 2023년 53.7%(1만712건)로 높아졌다. 심상치 않은 통계다. 부(富)가 고령층 안에서만 이동하는 증거여서다.
자녀에게 재산을 미리 물려주고 싶어도 상속세와 증여세는 큰 부담이다. 재산의 대부분이 건물·토지 등 부동산이라 쪼개서 넘겨주기도 쉽지 않다. 한국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다. 상속 재산 30억원 이상이면 적용된다. 10억~30억원 40%, 5억~10억원 30%, 1억~5억원 20%, 1억원 이하 10%이다. 주식인 경우 최대 주주 할증과세(20%)가 붙으면 60%까지 올라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상속세를 부과하는 나라는 24개국이다. 평균 최고세율은 26%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나머지 14개국은 상속세가 없거나 자본이득세 등으로 대체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 7월 세법개정안을 발표하고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고, 최대주주 보유 주식 할증과세(20%) 폐지 등을 담았다. 24년간 유지돼온 과세체계가 손질될지 관심이다.
먼저 고령화를 겪은 일본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노노 상속’ 현상이 뚜렷했다. 80세 이상 피상속인의 비중이 2018년 71.1%까지 치솟았다. 자산이 청년층까지 순환되지 못하고 노인층에만 집중됐다. 자산의 고령화는 소비와 투자의 위축으로 이어졌다. 일본의 장기 저금리 기조와 맞물려 집에 현금을 쌓아놓는 ‘장롱예금’ 현상이 빚어졌다. 일본은 2022년부터 ‘부의 회춘’ 정책을 실행 중이다. 세율은 유지하는 대신 증여세 감면 혜택으로 ‘생전 증여’를 활성화했다. 또 손주 교육비와 결혼·육아비용 증여세를 면제해 ‘조손 증여’도 유도했다. ‘부의 대물림’이라는 부정적 정서에서 벗어나 상속을 ‘부의 선순환’ 수단으로 고민할 때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