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패킹 성지, 한국의 갈라파고스, 미니 제주도. 모두 굴업도(掘業島)를 부르는 별칭이다. 인천 옹진군 덕적면에 속한 굴업도는 중생대 백악기 말(8천만~9천만년 전) 화산 폭발로 생성된 섬이다. 침식의 무한 반복을 기록한 암석과 화산재는 신비한 지형을 빚어냈다. 섬 동쪽에는 덕물산(해발 138.5m)과 연평산(해발 128m)이 솟아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너른 구릉과 초원이 덕적군도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백패커들은 목기미해변, 개머리언덕, 코끼리바위, 낭개머리, 한위바위까지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인증숏 남기기 바쁘다. 소사나무 군락과 천연기념물 검은머리물떼새·사슴이 노니는 천혜의 보고다. 남쪽 끝자락에 딸린 토끼섬의 해식와(海蝕窪·해안 절벽 아랫부분 침식지형)도 건재하다.
늘 평화로울 것만 같은 굴업도도 운명의 기로에 놓인 적이 있다. 1994년 12월 느닷없이 정부가 굴업도를 핵 폐기장 최적 후보지로 선정한 것이다. ‘…굴업아 도망쳐라/굴업아 내 가슴으로 숨어라…’ 저자 박영복은 ‘핵(核) 서사시 굴업도(1995년)’에 애타는 민심을 담아냈다. 다행히 활성단층이 발견돼 이듬해 11월 지정 취소됐다. 2005년에는 CJ그룹 C&I레저산업이 섬 면적의 98%를 사들였다. 골프장을 포함한 관광단지 개발 추진에 나서면서 굴업도는 또 한 번 술렁였다. 1천500만t 규모의 산이 절토당할 위기였다. 시민들은 다시 뭉쳤다. 갯벌학교, 포럼, 사진전 등 굴업도 생태보전의 정당성을 널리 알렸다. 결국 골프장 논란은 2014년 사업 계획이 철회되면서 일단락됐다.
굴업도를 잇는 직항 여객선 ‘해누리호’가 지난 25일 취항했다. 487t급으로 여객 388명과 차량 15대를 싣고 순환한다. 오전 9시 인천항 여객터미널을 출발해 문갑도~지도~울도~백아도~굴업도~문갑도를 거쳐 오후 4시 여객터미널로 돌아오는 노선이다. 덕적도 외곽 5개 섬 직항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민들은 육지 왕래가 한결 수월해져 생필품 걱정을 덜었다. 덕적도에서 환승하는 불편을 감수했던 백패커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다.
굴업도의 비경은 시민들과 사회가 힘겹게 지켜낸 ‘서해의 진주’다. 굴업도와 함께 문갑도 오지 트레킹·지도 몽돌해변·울도 벽화·백아도 기차바위도 버킷리스트에 추가할 법한 곳이다. 직항 해누리호 취항으로 가까워진 만큼, 더 귀하게 바라보고 소중히 머물다가 흔적 없이 떠나야 할 의무가 있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