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머리 소녀는 의자에 앉아 두 주먹을 쥐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무례한 일본정부에 대한 분노가 담겨있다. 어깨 위의 작은 새는 고인이 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영혼과 후손들을 이어주는 영매(靈媒)다. 빈 의자는 소녀와 나란히 앉아 역사의 아픔을 되새겨보는 자리다. 할머니 형상의 그림자 속에는 나비 한 마리가 새겨있다. 나비로라도 환생해서 일본정부의 사죄를 받아야 한다는 절규가 날갯짓하는 듯하다.

일본정부는 줄곧 “일본군이 군대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라는 파렴치한 태도를 보여왔다. 용기를 낸 고(故) 김학순 할머니는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식 석상에서 처음 증언했다. 1992년부터 피해 할머니들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를 이어갔다. 1천회를 맞은 2011년 12월 14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 1호가 건립됐다. 현재 전국에는 154개의 소녀상이 있다. 나라 밖에는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에 처음 세워졌고, 캐나다·호주·독일 등에 31개가 있다.

평화의 소녀상이 연이어 수난을 겪고 있다. 지난 10월 미국 국적의 한 유튜버는 라이브 방송을 켠 채 소녀상에 입맞춤하고 외설적인 춤을 춰 공분을 샀다. 렉카 유튜버들이 응징에 나서 주먹을 휘둘렀지만, 법적 처벌은 받지 않았다. 지난 2~3월에는 한 극우단체 대표가 수원·안산·서울 등을 오가며 소녀상 얼굴에 ‘철거’ 글씨가 쓰인 마스크와 검은 비닐봉지를 씌웠다. ‘위안부 사기’라는 어깨띠 퍼포먼스를 하고 피해자를 폄훼하는 팸플릿도 비치했다. 지난달 20일 법원은 벌금 10만원을 선고했다. 소녀상을 훼손하지는 않아 단순 경범죄처벌법이 적용된 탓이다. 소녀상 모욕은 국민의 법 감정을 거스르지만, 별다른 처벌 규정이 없다. 정치권은 처벌을 강화하는 법 개정안 발의에 나섰다. 국회 국민동의청원도 5만명을 돌파했다.

평화의 소녀상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을 투영한 상징물이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제도의 성역이지만 지켜야 할 금도(襟度)가 있다. 소녀상은 역사 왜곡의 분풀이 대상이 아니다. 맨발의 소녀상은 발뒤꿈치가 땅에 닿지 않는다. 피해자들이 귀향해서도 마음 편히 정착하지 못한 불안함과 방황을 표현하고 있다. 2024년 오늘, 이념 갈등으로 수난 당하는 소녀상의 고단함과 닮아있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