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가 무산되자 국난급 국정 마비 사태가 나라와 국민 전체를 쓰나미처럼 덮치고 있다. 3일 밤 선포된 비상계엄은 위헌적이었다. 헌법 제77조는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로 계엄 선포 조건을 엄격히 제한한다. 대통령의 3일 밤 비상계엄 선포는 헌법을 한참 벗어났다. 계엄 선포 후 곧바로 발령된 계엄포고령 1호는 불법적이다. 계엄법 7조는 계엄사령관의 관장 사무를 ‘계엄 지역의 행정기관 및 사법기관’으로 명시했다. 무소불위의 계엄권력을 견제할 입법기관을 계엄사무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포고령 1호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며 계엄군을 국회에 진입시켜 헌법의 명문을 짓밟았다.
■ 비상계엄 실패 대가 참혹해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비상계엄령은 4일 새벽 여야 국회의원 190명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으로 해제됐다. 대통령의 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와 계엄사령관의 불법적인 포고령을 국회가 합헌적 요구로 무산시킨 것이다.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국회의 계엄 요구에 승복했지만, 비상계엄령 선포에 따른 위헌과 불법 시비는 그대로 남았다.
비정상적인 비상계엄 실패의 대가가 참혹하다. 국민적 불신의 대상으로 격하된 대통령으로 인해 국정이 멈추는 최악의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 6당은 4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탄핵안이 통과되면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유고 상태가 된다. 이에 앞서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전원과 대통령실 실장 및 수석급 고위직들이 일괄 사의를 표했다. 대통령의 초헌법적 비상계엄령을 막지 못한 과오에 대한 연대 책임의 표시다. 사의의 현실화 여부와 상관없이 윤석열 정부는 무정부 상태에 버금가는 식물정부로 전락하기 직전이다.
■ 국정 마비 책임 대통령의 몫

경제도 비상계엄 여파에 갇혔다. 환율이 오르고 주가가 하락하면서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국가채무가 폭증하고 국민이 부채에 허덕이는 나라에서 금융시장의 혼란은 치명적이다. 대외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치면 무역국가의 경제 선순환 구조가 깨지고, 물가와 금리가 흔들리면 민생이 무너진다. 한국은행이 단기 유동성 공급 확대 등 선제적인 조치에 나섰지만, 국정 마비 현상이 깊어지고 길어지면 대응 불가 상황에 몰릴 수 있다.
급변하는 국제정세로 초래된 안보 불안도 행정 공백과 겹치면 안보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 야당에서는 벌써부터 비상계엄 사태를 전복하기 위한 의도적인 남북 무력충돌 시나리오를 거론하고 있다. 실제 국지적 충돌이 발생해도 이에 대응할 국방의지를 받쳐줄 국민의지에 금이 가고 있는 징후다. 노조가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하고 민심이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
엄청난 정치 사변의 원인이 국방장관의 단독 건의에 혹한 대통령의 오판 때문이었다니 기가 막힌다. 대통령은 야당의 입법 독재로 인한 국정 마비를 비상계엄 선포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본인의 시대착오적인 비정상 비상계엄 발동으로 국정 마비를 자초했다. 대통령의 권력기반인 집권 여당도 3일 밤 국회 담장 안과 밖으로 분리됐고, 대통령은 고립무원의 처지로 떨어졌다. 비상계엄 사변의 처음과 끝에 대통령이 있다. 대통령은 사태 해결의 유일한 당사자이자, 정치적·법률적 결과를 감당해야 할 유일한 책임자이다.
■ 민주당 수권능력 발휘할 때

입법권력인 민주당의 역할이 중대해졌다. 전시와 사변 중에도 국가는 작동해야 한다. 헌법이 계엄을 국가 작동의 최후 수단으로 인정한 취지다. 대통령과 정부와 여당이 무력해진 초유의 국가비상사태다. 헌법과 법률의 절차에 따라 비상계엄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데 집중하되, 차분하고 냉정한 수권능력을 발휘해 국정 공백을 메꾸고 정상화시켜야 한다. 국가 안보와 민생치안의 보루인 군과 경찰에 대해 지지와 신뢰를 표해야 한다. 정부의 기능을 유지할 내각의 역할을 보호해 줘야 한다. 비상계엄 사태에 비해 초라한 감사원장·검사 탄핵도 유보하면 더할 나위 없다. 무엇보다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고 국민이 일상에 집중할 수 있는 안정적인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노조의 총파업 유보를 설득하고, 의료 정상화를 위한 대화에 나서야 한다. 거친 표정으로 장외에 서기보다 차분한 태도로 국회에서 국정 공백을 메워주기를 바란다. 국정 마비 사태에 광장에서 같이 흥분하면, 민주당도 국민도 나라도 예측불가능한 대혼돈에 갇힌다.
/경인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