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사는 곧 헌정의 발전을 위해 싸워온 여정이다. 민주주의 쟁취 과정에는 계엄(戒嚴)이라는 암운이 감돌기도 했다. 헌법 77조 2항을 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비상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다.
평온했던 12월 평일 밤, 느닷없는 비상계엄은 나라 전체를 뒤흔들었다. 10·26 사건 이후 45년 만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따라 국방부는 지난 3일 23시를 기해 포고령 1호를 발령했다. 자유 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 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영장 없이 체포·구금·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에 따라 처단한다는 엄포도 빼놓지 않았다.
1.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2.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한다. 3.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4.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를 금한다. 5.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6. 반국가세력 등 체제 전복세력을 제외한 선량한 일반 국민들은 일상생활에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계엄사령관 명의로 발표된 포고령 6개항은 모골이 송연하다. 국회의 작동을 금지하고, 언론자유를 짓밟아 보도행위를 통제하려 했다. 전공의를 특정하고 위반 시 처단 대상으로 삼았다. 심각한 의정 갈등에 기름을 붓는 표현이다. 모두 초헌법적인 억압을 불사한다는 내용이다.
윤 대통령의 나홀로 계엄은 ‘150분 천하’로 끝났다. 국회의 일사불란한 해제 요구안 의결로 무산됐다. 만약 비상계엄이 성공했다면 민주주의 시계가 참혹했던 40여 년 전으로 되돌아갈 일이었다. 야 6당의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로 탄핵열차의 시동이 걸렸다. 최고 통수권자의 오판으로, 혼돈과 불안은 또 국민의 몫이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