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는 오늘 아침 미명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해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했습니다.” 1960년 새벽 5시 군사혁명위원회 장도영 위원장은 비상계엄 선포로 5·16 쿠데타를 알렸다. 윤보선 대통령의 비상계엄 권한을 박정희가 주도한 쿠데타 세력이 찬탈했다.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가 피살된 직후 대통령권한대행이 된 최규하는 부산에 한정됐던 계엄을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계엄으로 확대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대통령 시해사건 수사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로 넘어갔다. 합수본부장 전두환은 정승화 사령관을 체포 구금하고 계엄사를 장악했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해 1980년 5·17 전국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어진 광주학살, 정치·언론탄압으로 서울의 봄은 막을 내렸다.

박정희는 불법계엄으로 대통령이 됐고, 전두환은 합법계엄에 올라타 반란정권을 세웠다. 박정희는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는 가신의 총구에 숨졌고, 눈부신 산업화의 업적에도 지금껏 쿠데타의 업보를 씻지 못한다. 전두환은 군사반란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후 사면받았지만, 사후 지금껏 누울 땅 1평 찾지 못한 채 유골함에 갇혔다.

비상계엄으로 탄생한 두 번의 군인정권이 87개헌으로 완전히 청산된 이후 대통령의 비상대권인 비상계엄은 헌법의 조문으로만 존재했다. 비상계엄 선포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평시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군사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계엄사령관에게 전권을 이양한다? 정신이 나가지 않고선 실행할 수 없는 일이다. 국민이 40년 가까이 성숙시켜 온 민주주의엔 비상계엄이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깼다. 비상계엄을 선포할 명분도 이유도 없었다. 국회를 장악한 야당의 헌법 권리와 대통령의 헌법 권리가 충돌했을 뿐이다. 정치로 해결할 일이었다.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절정에 달했던 정국은 정부·여당에 유리했다.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가 미스터리인 이유다. 대통령이 이성의 끈을 놓친 이유를 미치도록 알고 싶은데, 비상계엄 선포문만큼이나 황당할까봐 두렵기도 하다. 비상계엄은 헌법에 따라 무산됐지만, 대통령의 탄핵도 헌법의 정한 정수를 못 채워 무산됐다. 답답하고 분통이 터져도 위헌 대통령의 탄핵도 헌법을 따라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분명한 건 위헌적인 비상계엄의 법적 책임은 면할 길이 없는 점이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