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문인화가 겸재 정선(鄭敾·1676~1759)의 ‘송파진도(1741·영조 17)’에는 남한산성이 등장한다. 송파나루터 앞에 선 겸재의 시선이겠다. 돛단배가 한강을 유유자적하고, 저 멀리 남한산성이 보인다. 푸르른 소나무들이 성곽의 머리 위에 앉은 듯이 창창히 솟아있다. 그림 속 남한산성은 100년 전 병자호란(1636·인조 14) 당시 항전과 항복의 한을 묻어둔 듯 평화롭기만 하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의 아픔이 서린 곳이다. 평균 고도 해발 480m 이상의 험준한 산세지만, 산 위는 넓은 분지여서 별궁이 지어졌다. 인조와 조정은 청 태종이 이끈 10만대군을 피해 성안으로 피신했다. 성내 장병은 고작 1만3천여명, 식량은 50일을 버티기 힘들 정도였다. 청군은 소나무로 만든 목책을 쌓고, 목책과 목책 사이에 새끼줄을 연결해 방울을 매달았다. 조선군 전령이 목책을 넘으면 소리가 나니 즉시 발각될 수밖에 없었다. 엄동설한 소나무 군락은 47일간 고립무원의 국운과 함께했다. 이후 이곳은 을미의병의 최대 격전지로, 독립운동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남한산성은 총 12.4㎞에 달한다. 남문에서 수어장대를 지나 서문·북문, 동장대까지 60㏊ 규모의 아름드리 소나무 1만4천본이 서식하고 있다. 수도권 최대 소나무 군락지다. 일제강점기 전쟁 물자·땔감용으로 무분별하게 벌목을 당하기도 했다. 1927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남한산 금림조합’을 결성해 도벌을 막은 상징적인 곳이다. 지난해에는 ‘대한민국 100대 명품숲’에 선정돼 보전 가치를 인정받았다. 소중히 지켜온 덕에 연간 300만명이 사시장철 숲길을 거닐며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남한산성 소나무 숲이 지난달 말 내린 46.9㎝의 기록적인 폭설로 쓰러지고 부러졌다. 습설의 하중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특히 산성로터리에서 시작되는 산책로 1코스에서 피해가 컸다. 150그루는 아예 소생이 어렵고 300그루는 가지가 꺾였다. 수어장대 인근 수령 200년 넘는 소나무도 다쳤다. 설상가상 지구 온난화로 유충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재선충 피해도 걱정이다. ‘3대 산림재난’은 산불·산사태·재선충병이다.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수시로 예고된다. 이제 폭설도 포함해 ‘4대 산림재난’으로 바꿔야 할 지경이다. 남한산성 소나무들은 괴롭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