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인 511명에게 760억원대 전세보증금 사기 행각을 벌인 ‘수원 일가족 전세사기’ 일당이 최근 법의 심판(12월10일자 7면 보도)을 받았지만, 피땀 흘려 모은 돈을 전세사기 일가족에게 속절없이 빼앗긴 피해자들은 1심 결과에 대해 터무니 없는 형량이라고 반발하며 항소심 재판부에 엄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9일 수원지법 형사11단독 김수정 판사는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대업자 정모(60)씨에게 징역 15년 법정 최고형을 선고했다. 공범인 아내 김모(54)씨는 징역 6년을, 그의 아들 정모(31)씨는 징역 4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문제는 정씨 외에 공범들의 선고 형량은 검찰 구형대비 절반도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앞서 검찰은 김씨에게 징역 15년을, 그의 아들에게는 징역 12년을 각각 구형했다. 재판부는 정씨 일가에게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대규모 임대사업을 무분별하게 벌여 막대한 피해를 입힌 점 등을 들어 엄벌의 불가피함을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정씨가 자금관리를 도맡았기 때문에 공범 김씨가 임대사업 구조의 위험성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했을 것이라며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이에 피해자들은 김씨 또한 남편 정씨와 함께 임대사업에 깊숙히 개입했다며 반박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이자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경기대책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이재호(34) 위원장은 “나의 경우 처음 계약할 때만 정씨와 연락했을 뿐 재계약할 때 소통한 사람은 김씨였다”며 “함께 사업을 경영했는데 가족인 김씨가 임대사업에 대해 몰랐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정씨와 감정평가사인 그의 아들은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임대건물을 감정평가한 혐의를 받았는데, 재판부는 해당 건물이 시장가격보다 높게 책정된 점은 인정하면서도 그 초과 범위를 알 수 없는 점과 감정평가 법인의 심사를 거친 점 등을 고려해 증거 부족으로 감정평가법 위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이모(36)씨는 “임대업자인 아버지가 감정평가를 의뢰하고 아들이 평가해 시세보다 높은 가격을 책정했는데 그게 위법이 아니면 무엇이 위법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검찰은 지난 12일 정씨 일가에 대한 1심 판결에 대해 김씨와 아들 정씨의 형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항소했다. 정씨도 마찬가지로 13일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피해자들은 항소심 재판부에 정씨 일가족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차모(36)씨는 “몇백억씩 사기를 저지르고도 항소장을 제출한 게 괘씸하다”며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징역 100년을 맞아도 모자란 이들에게 최고형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근 변호사(세입자114 운영위원장)는 “통상적으로 주범이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 주범은 엄격하게 처벌하지만, 공범에 대해서는 양형을 감형하는 것이 형사재판의 선례”라며 “일가족이 감정을 했으면 평가가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감정평가법 위반 무죄 부분은 항소심에서 바뀔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한규준기자 kkyu@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