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역사 이래 왕조의 흥망성쇠는 외교의 성패로 결정됐다. 약소국인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서 이이제이 외교로 국력을 키운 뒤 외세인 당나라와 연합해 한국사 최초의 통일왕조를 세웠다. 고구려와 백제에게는 나당연합과 같은 동맹외교가 없었다. 조·명 동맹으로 왜란을 극복한 조선은 대륙의 정세를 오판해 호란을 자초하고 삼전도의 수모로 왕조의 명맥을 겨우 이었지만, 19세기 세계사 격변에 대응할 외교 부재로 식민의 치욕을 당했다.

대한민국이 6·25 전쟁으로 세계사에서 지워질 위기를 넘긴 것도 국제사회의 외교적 이해가 엇갈린 덕분이다. 1950년 6월 2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과한 두 건의 결의안으로 미국과 유엔군이 참전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했다면 불발됐거나 지연됐을 일이다. 대한민국에게 소련의 안보리 불참은 천우신조의 오판이었다. 이승만은 아예 휴전을 원하는 미국을 북진론과 반공포로 석방으로 압박해 미군을 주저앉혔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즉 한미동맹 시대를 연 것이다.

휴전 이후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동맹의 방파제 밑에서 한강의 기적과 자주국방을 달성했다. 박정희는 주한미군 유지를 위해 월남전 파병을 결정했고, 미군 철수론을 핵무장론으로 막았다. 대북 햇볕정책과 한미평등을 강조한 진보진영 정권들의 외교 1순위도 한미동맹 유지 강화였고, 역대 대통령들은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로 외교를 시작했다.

18세기 대영제국 총리 파머스턴경은 외교의 금과옥조를 남겼다. “항구적인 동맹도 영구적인 적도 없다. 항구적이며 영구적인 것은 우리의 이익이며, 그 이익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이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 새해 첫 달 미국 대통령이 된다. 트럼프 외교 순위에서 한미동맹이 곤두박질친다. 지난 16일 첫 기자회견에서 러시아, 북한, 중국, 일본 지도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친분을 과시한 트럼프가 대한민국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 탄핵심판으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탓이 분명하다.

트럼프 리스크로 금이 갈까 우려했던 한미동맹이다. 대통령이 괴이한 비상계엄으로 용산에 유폐돼 외교가 중단됐다. 세계질서가 격변하는 시대에 스스로 자기 눈을 찌른 대통령이라니, 불길한 징조다. 권력공백이 역사적 외교참사를 초래할까봐 걱정이다. 초당적 한미동맹사절단 구성과 파견이 시급하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