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지갑은 열릴 줄 모르고, 수출 증가율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불황의 터널은 어둡기만 하다. 올해 3분기 기준 소매판매액지수는 100.6으로 10분기째 내리막이다. 1995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최장 기록이란다. 소매판매액지수가 곧 내수의 지표인데, 갈수록 소비가 얼어붙고 있다는 방증이다. 여행과 외식이 지탱해 주는 서비스 소비도 1.0% 증가에 그쳤다. 2021년 1분기 이후 최악이다. 범용 반도체 수요 부진과 석유화학 업종 불황이 겹쳐 국내 기업들의 성장성마저 둔화됐다. 대기업(5.4→4.7%)과 중소기업(4.6→2.4%)의 매출액 증가율도 동반 하락했다.
“전향적인 내수·소비 진작 대책을 강구하라.” 지난 2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주문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내년 경제성장률 등 악화한 경제 지표를 지적하고 거시경제 개선과 양극화 타개를 강조했다고 전해졌다. 내수를 살리겠다던 대통령은 다음날 밤 기습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교과서에서나 봤던 ‘45년 전 계엄의 망령’에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충격에 빠진 시민과 기업들은 연말 모임이나 회식을 취소했다. 접경지역은 북한의 대남 확성기 소음에 이어 터진 역대급 악재에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지독한 불황 속에 11월 폭설, 12월 비상계엄. 참 잔인한 겨울을 맞았다. 법적·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던 대통령은 수사에 버티기 중이다. 내란사태 피의자 신분인 대통령권한대행도 위태롭다. 대통령을 배출한 국민의힘은 반성이 없다. 여야의 수싸움에 정국은 꼬여만 간다.
계엄정국이 11일 만에 탄핵정국으로 전환됐다. 놀라운 민주주의 회복력을 발휘했다. 당장 얼어붙은 내수경제부터 살리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나섰다. 14일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취소했던 송년회를 재개하시길 당부드린다”며 자영업·소상공인 골목 경제가 너무 어렵다고 호소했다. 정부도 바통을 이었다. 행안부는 지방공공요금 인상을 미뤘다. 자치단체장들도 취소했던 지역축제와 행사를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서민을 덮친 경제 한파로 골목경제가 얼어붙었다. 금 모으기로 외환위기를 넘긴 한국인이다. 연말 송년회를 간청하는 자영업자들의 읍소에 직장인들이 ‘회식이 애국’이라 화답하자, 상권에 훈풍이 불기 시작했단다. 위기마다 빛나는 품앗이 민족의 저력, 언제나 눈물겹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