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만의 비상계엄과 탄핵정국 와중에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했다. 지난 12월 29일 오산시에 거주하는 일가족 4명과 용인시민인 승무원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인하대 합격 축하 여행을 떠났던 삼부자도 변을 당했다. 대한민국은 집단 우울감에 빠져들었다.
참사 나흘째인 새해 첫날에서야 수습된 희생자의 시신이 모두 이름을 찾았다. 유가족들은 현장에 처음 들어갔다. 간단한 차례상을 마련해 헌화하고 약식 제사로나마 고인들과 작별했다. “고통 없는 천국에서 편히 쉬렴”,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지내” 절을 하던 유가족은 엎드려 통곡했다. 몸을 가누지 못해 주저앉거나, 울부짖다 혼절해 구급차에 실려갔다. 2일에는 첫 발인식이 눈물 속에 엄수됐다.
비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유가족 곁에는 시민들이 함께했다. 합동분향소 조문행렬은 1㎞ 넘게 이어졌다. 전국 곳곳에서 날마다 1천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모였다.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 출연했던 안유성 명장은 사고 소식을 듣고 김밥 200줄을 싸들고 달려왔다. 이영숙·배경준·송하슬람 셰프와 지역 요식업 종사자들이 손을 모아 전복죽 1천인분을 만들었다. 익명의 기부자들은 ‘카페 선결제’ 릴레이 중이다. 구호·봉사·사회단체들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부스를 세우고 생수·담요·생필품 등 나눔에 동참했다. 밥차·커피차·세탁차도 도착했다. 자원봉사자들은 곡기를 끊은 유족들을 대신해 배식을 받아 일일이 배달하고 위로했다. 해돋이 대신 공항을 찾은 한 가족은 청소에 팔을 걷었다. 공항 내 한 음식점은 아예 무료 운영 중이고, 인근 펜션들도 유가족에 숙소를 무상 제공하고 있다. 광주지역 치과의사들은 고인이 돌보던 교정환자들을 무료 진료하기로 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무안군에는 고향사랑기부제 신청이 답지하고 있다.
‘見利思義 見危授命(견리사의 견위수명)’ 이익을 보면 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 안중근 의사가 여순 옥중에서 쓴 유묵의 문구다. 하수상한 시절과 맞물려 묵직한 의미를 던진다. 예나 지금이나 위기마다 숨어있던 영웅들은 어김없이 나타난다. 끊임없는 국난극복으로 대물림된 DNA는 연대의 힘을 발휘한다. 이 땅의 미래는 위정자가 아닌 국민의 손에 달려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강희 논설위원